권석[卷石]~권선지[勸善紙]~권선징악[勸善懲惡]~권설[卷舌]

권석능성대[拳石能成大]  중용(中庸) 26장의 “저 산이 한줌 돌이 쌓인 것이나 그 지극함에 미치면 풀과 나무가 나며, 새와 짐승도 살고 보물도 생산된다.[今夫山, 一拳石之多, 及其廣大, 草木生之, 禽獸居之, 寶藏興焉.]”를 인용한 것인데, 산이 한줌씩 모인 것이 아니라 천기 자연의 광대함이 있다는 것이다.

권석주[權石洲]  권필(權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장(汝章), 호는 석주이다. 권벽(權擘)의 아들이며 정철(鄭澈)의 문인이다. 이정귀(李廷龜)가 명나라 사신 고천준(顧天俊)을 맞게 되어 문사(文士)를 엄선할 때 야인으로서 이에 뽑혀 문명을 떨쳤다. 광해군의 비(妃) 유씨(柳氏)의 아우 유희분(柳希奮) 등 척족(戚族)들의 방종을 풍자한 궁류시(宮柳詩)를 지어 비방하자, 광해군이 크게 노하여 친국(親鞫)하여 혹독한 고문 끝에 귀양길에 올라 동대문 밖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주는 술을 폭음하고 이튿날 죽었다. 1623년에 사헌부 지평에 추증되었고, 광주(光州) 운암사(雲巖祠)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석주집(石洲集)이 있다.

권석지다[卷石之多]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6장 “이제 저 산은 한 자잘한 돌이 많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인데 그 광대함에 미쳐서는 초목이 거기서 생겨나고 금수가 그곳에서 살며 보물이 그곳에서 나온다.[今夫山一卷石之多, 及其廣大, 草木生之, 禽獸居之, 寶藏興焉.]”의 주에서 “권은 구이다.[卷, 區也.]”라고 하였다.

권선지[勸善紙]  불사(佛事)가 있을 때, 또는 가을의 추수 때에 승려가 속가(俗家)에 다니며 시주하라고 돌라 주는 종이 주머니를 이른다.

권선징악[勸善懲惡]  선행(善行)을 권장(勸)하고 악행(惡行)은 징계(懲戒)함. 권징(勸懲). 좌전(左傳) 성공(成公) 14년 조에 “노(魯)나라 성공(成公) 14년 9월에 교여(僑如)가 부인 강씨(姜氏)를 데리고 제(齊)나라에서 돌아왔다. 교여의 족명(族名, 성씨)을 호칭하지 않은 것은 부인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렇게 말한다. 춘추(春秋)의 호칭은 알기 어려운 듯 보이지만 알기 쉽고, 쉬우면서도 담긴 뜻은 깊으며, 우회적이지만 잘 정돈되어 있고, 표현은 노골적이지만 품위가 없지 않으며, 악행을 징계하고 선행은 권장한다. 성인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렇게 지을 수 있겠는가.[九月, 僑如以夫人婦姜氏至自齊. 舍族, 尊夫人也. 故君子曰, 春秋之稱, 微而顯, 志而晦, 婉而成章, 盡而不汚, 懲惡而勸善. 非聖人誰能修之.]”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권설[卷舌]  28수의 하나인 묘수(昴宿)에 딸린 별자리 이름이다. 비밀스러운 지혜를 상징한다.

권설[卷舌]  혀를 만다는 뜻으로, 놀라거나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음의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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