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權與]~권여전오[權輿典午]~권연[勸緣]

권여[權與]  시초. 권(權)은 ‘저울대’, 여(與)는 ‘수레 바탕’으로, 곧 저울을 만들 때에는 저울대부터 만들고, 수레를 만들 때는 수레 바탕부터 만든다는 데서 유래하여 ‘사물의 시작’ 또는 ‘처음’을 이른다.

권여[權輿]  저울을 만들 때에는 반드시 저울대[權]부터 시작하고, 수레를 만들 때에는 반드시 수레 판[輿]부터 시작하므로 일의 시초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시경(詩經) 진풍(秦風) 권여(權輿)에 “나에게 잘 차린 음식이 가득하더니, 지금은 매 끼니조차 빠듯하네. 아아, 처음과 다르도다.[於我乎 夏屋渠渠 今也每食無餘 于嗟乎 不承權輿]”라고 하였다. 이 시는 진(秦) 나라 임금이 선비들을 대우하기를 시종일관하지 못함을 풍자한 노래이다.

권여인주모[權與人主侔]  당 고종(唐高宗)이 풍현(風眩) 증세로 인해 눈이 잘 보이지 않자, 무후(武后)로 하여금 정사를 결정하게 하였는데, 고종의 뜻에 맞게 일을 처리하였다. 이에 모든 정사를 무후(武后)에게 맡기니, 이로부터 무후(武后)의 권력이 임금과 동등하였다. 통감절요(通鑑節要) 당기(唐紀) 고종(高宗)에 “상(上)이 처음 풍현(風眩) 증세에 시달려 눈도 잘 볼 수가 없었다. 백관(百官)들이 정사를 아뢸 적에 상(上)이 황후(皇后)로 하여금 결정하게 하였는데, 황후는 성품(재주)이 명민하고 문사(文史)를 섭렵하여 일을 처리함에 모두 상(上)의 뜻에 맞았다. 이로부터 비로소 황후에게 정사를 맡겨 황후의 권력이 임금과 동등하였다.[上初苦風眩, 目不能視, 百司奏事, 上或使皇后決之, 后性明敏, 涉獵文史, 處事皆稱旨, 由是始委以政事, 權與人主侔矣.]”라고 하였다.

권여전오[權輿典午]  권여(權輿)는 시작을 뜻하며, 전(典)은 사(司)를 오(午)는 십이지지(十二地支)의 마(馬)로 전오(典午)는 사마(司馬)를 뜻하는바, 사마(司馬)는 진(晉)나라의 국성(國姓)으로 곧 진(晉)나라 문장(文章)의 시조가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진(晉)나라의 초대 황제인 사마염(司馬炎)은 사마소(司馬昭)의 아들이고 사마의(司馬懿)의 손자로 위(魏)나라를 찬탈하여 진(晉)나라를 세웠는데, 진(晉)나라는 위(魏)나라의 문장제도(文章制度)를 따랐다. <孫子髓>

권연[勸緣]  인연이 있는 이에게 권하여 재물을 사찰(寺刹)에 기부하게 하던 일을 말한다.

권영만종등영모[顴影漫從燈影摹]  새파란 눈동자에 눈썹 수염 갖추었네. <和題石帆本慈屺戴笠所像 / 金正喜> 소식(蘇軾)의 전신(傳神)에 “顧虎頭云 傳形寫影 都在阿睹中 其次 在顴頰”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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