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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궤기상[几几氣像]~궤람[氿濫]~궤리봉류[跪履封留]


궤궤[憒憒]  마음이 어지러움, 어두운 모양, 확실치 않은 모양.

궤궤[几几]  신을 꾸민 모양, 또는 편안하고 묵직한 모양. 함께 하는 모양.

궤궤[几几]  시경(詩經) 빈풍(豳風)에 “공은 도량이 넓으시고, 붉은 신 신으신 걸음걸이 의젓하시네.[公孫碩膚 赤舃几几]”라 하였는데, 이는 군왕(郡王)의 신은 붉은 신, 즉 관복 차림의 의젓함[安重]을 말한 것이다.

궤궤기상[几几氣像]  이 말의 출전은 시경(詩經) 낭발(狼跋)이다. 주공(周公)이 주변으로부터 비방과 의심을 받고 성왕도 그의 충정을 알아주지 않았으나 여전히 도덕이 융성하여 큰 변고를 만났지만 그 평상심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궤궤연[憒憒然]  번거롭고 어지러운 모양. 번란(煩亂). 예법의 번거로움을 나타내는 표현.

궤람[氿濫]  샘물이 솟아 넘침. 솟아나는 물. 똑바로 솟는 샘을 남천(濫泉), 옆으로 솟는 샘을 궤천(氿泉)이라 한다. <爾雅 釋水>

궤람[氿濫]  작은 못을 뜻하는 말로 도량이 좁은 사람을 비유한다. 후한서(後漢書) 권53 황헌열전(黃憲列傳)에 “봉고(奉高)의 그릇은 비유하자면 궤람이 비록 맑기는 하지만 쉽게 뜰 수가 있는 것과 같거니와 숙도(叔度)는 넘실거리는 천 경의 호수와 같아 맑게 해도 맑아지지 않고 흐리게 해도 흐려지지 않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奉高之器, 譬之氿濫, 雖清而易挹. 叔度之器, 汪汪若千頃之陂, 澄之不清, 擾之不濁, 不可量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숙도는 황헌(黃憲)의 자이다.

궤리[跪履]  궤리는 무릎 꿇고 신발을 신겨드린다는 뜻이다. 한나라 장량(張良)이 하비(下邳)의 다리 위에서 황석공(黃石公)이라는 노인을 만나, 그의 신발을 다리 밑에서 주워다가 공손히 무릎 꿇고 앉아서 신겨 준 일을 말한다. 그 덕분에 황석공으로부터 태공병법(太公兵法)을 받고 익힌 결과, 한 고조(漢高祖)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궤리[跪履]  한 고조(漢高祖)의 모신(謀臣) 장량(張良)이 일찍이 하비(下邳)의 흙다리 위[圯上]에서 황석공(黃石公)을 만나, 그가 짐짓 다리 밑으로 떨어뜨린 신을 주워다가 그의 명에 따라 공손히 꿇어앉아서 신겨주고, 그로부터 태공(太公)의 병서(兵書)를 받아 익힌 다음, 한 고조의 모신이 되어 마침내 진(秦)나라를 멸하고 한업(漢業)을 세웠던 데서 온 말인데, 소서(素書)는 바로 황석공이 장량에게 준 병서를 가리킨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화도독산해경(和陶讀山海經) 시에 “소서가 황석공에게 있었으니, 무릎 꿇고 신 신기길 어찌 감히 사양하리.[素書在黃石 豈敢辭跪履]”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40 和陶讀山海經>

궤리명상서[饋鯉名相瑞]  공자(孔子)가 19세 때 송(宋) 나라 병관씨(幷官氏)에게 장가든 지 1년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을 낳을 때에 마침 노 소공(魯昭公)이 잉어를 공자에게 하사하였으므로, 임금의 하사를 영광스럽게 여겨 그 아들의 이름을 이(鯉)라 하고, 자를 백어(白魚)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훌륭한 자식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을 비유한다. <孔子家語 本姓>

궤리봉류[跪履封留]  꿇어앉아 신발을 신겨주고 유후(留侯)에 봉해짐. 초한(楚漢) 시대 장량(張良)이 일찍이 하비(下邳)의 다리 위에서 황석공(黃石公) 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이 짐짓 자기 신을 다리 밑으로 떨어뜨리고는 장량더러 주워 오라고 하므로, 장량이 마지못해 내려가서 신을 주워 오자, 그 노인은 또 장량에게 그 신을 자기 발에 신기라고 하므로, 장량이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그 신을 신겨 주었더니, 그 노인이 “아이를 가르칠 만하다.” 하고, 장량에게 태공병법(太公兵法) 한 책을 주므로, 장량이 그때부터 열심히 읽어 뒤에 한 고조(漢高祖)를 보좌하여 천하를 통일한 다음에는 마침내 유후(留侯)에 봉해지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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