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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사[鈞駟]~균석수루[勻石銖絫]~균세관휼[均稅寬恤]~균수[龜手]


균사[鈞駟]  말 네 마리가 끄는 수레를 사(駟)라고 하는데, 이 네 마리의 털 색깔이 고른 것을 균사(鈞駟)라고 한다.

균상[筠床]  대나무로 만든 상. 대나무 평상.

균석[鈞石]  무거운 저울추를 말하는데, 무게 단위로 30근을 균(鈞)이라고 하고 4균을 석(石)이라고 한다. 아주 무거운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균석수루[勻石銖絫]  균석은 균석(鈞石)으로, 무거운 저울추를 말하며, 수(銖)와 누(絫)는 모두 아주 가벼운 무게의 단위이다.

균세관휼[均稅寬恤]  균세(均稅)는 북송(北宋)의 세제(稅制)인데, 먼저 토지(土地)를 측량한 뒤에 토질(土質)의 비척(肥瘠)을 상고해서 등급을 나누어 세(稅)를 정하는 일이고, 관휼(寬恤)은 진제(賑濟)하는 일을 가리킨다.

균세사[均稅使]  조세를 감독하고 공평하게 하는 일을 맡았던 관리이다.

균소[勻韶]  균(勻)은 균(鈞)으로 천상(天上)의 음악인 균천광악(鈞天廣樂)이며, 소(韶)는 순 임금의 음악 이름이다.

균수[龜手]  마치 거북의 등딱지처럼 얼어서 터진 뭉툭한 손을 말한다.

균수[龜手]  손이 얼어서 거북의 등껍질처럼 갈라짐을 말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손이 얼어터지지 않는 약을 잘 만드는 송 나라 사람이 있었다.[宋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라고 하였다.

균수[均輸]  균수법(均輸法)으로 한 무제(漢武帝) 원정(元鼎) 2년(기원전 115)에 실시한 경제정책의 하나이다. 당시 전쟁과 공사로 국가의 재정이 고갈되자 상홍양(桑弘羊)의 건의에 따라 균수관(均輸官)을 군국(郡國)에 두어 물건이 많이 생산되는 지방에서 그 물건을 부세로 징수하여 생산이 적은 지방에 팔아서 그 이익을 얻도록 하였던 것이다. <史記 平準書>

균수[均輸]  균수평준법(均輸平準法)의 준말이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에 대농승(大農丞)이던 상홍양(桑弘羊)이 당시 잦은 정벌과 토목공사 때문에 발생한 국가의 재정난(財政難)을 타개하려고 실시한 경제 정책의 하나이다. 수도에 평준관(平準官), 지방에 균수관(均輸官)을 두고서 가격이 싼 지방의 물자를 비싼 지방으로 옮겨 팔며, 값이 쌀 때 사두었다가 비쌀 때 팔아 물가를 조절하고 재정(財政)을 확보하고자 한 정책이나, 이로 말미암아 상인들은 직업을 잃고 백성들은 자유판매의 길이 막혀 원망이 많았다. <漢書 武帝紀>

균수[均輸]  송(宋)나라 신종(神宗) 때 왕안석(王安石)이 시행한 신법(新法)의 하나로, 황실과 중앙 정부로 공급하는 물자의 유통 체계를 개선하여 국가 재정의 균형을 이루고자 한 정책이다. 즉 국가가 지방의 농산물을 조세로 징수하여 다른 지방에 운송・판매함으로써 국가의 재정 수입 증대와 물가 안정을 이루고자 한 것이었으나 국가가 상인의 역할을 대신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상인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균수[均數]  평행(平行)과 실행(實行)의 차인 영축차(盈縮差)로 궤도상에서 태양의 실질 운동에 대한 보정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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