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자[鈞慈]~균재[稛載]~균적[均糴]~균전[均田]~균제방정[均齊方正]

균자[鈞慈]  존경의 뜻을 표하는 말로 대체로 상관(上官)에 대하여 쓴다.

균재[稛載]  밧줄로 화물(貨物)을 묶어서 수레에 잔뜩 싣고 오는 것을 말하는데, 국어(國語) 제어(齊語)에 “제후의 사신들이 빈 자루를 들고 들어왔다가, 수레에 잔뜩 싣고 돌아갔다.[諸侯之使 垂橐而入 稛載而歸]”라는 말이 나온다.

균재이왕 수탁이귀[稛載而往 垂槖而歸]  가득 싣고 왔다가 빈 자루로 돌아감. 균재(稛載)는 가득 실음이고, 수탁(垂槖)은 빈 자루이다. 한유(韓愈) 답두수재서(答竇秀才書)에 “나의 전재(錢財)는 족하의 빈곤(貧困)을 구제하기에 부족하고 나의 문장은 족하를 깨우쳐 사업(事業)을 성취(成就)시키기에 부족하니, 가득 싣고 왔다가 빈 자루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錢財不足以賄左右之匱急, 文章不足以發足下之事業, 稛載而往, 垂槖而歸.]”라고 한 데서 보인다. 참고로, 국어(國語) 제어(齊語)에 “제후의 사신들이 올 때는 빈 자루로 왔다가, 갈 때에는 수레에 가득 싣고 돌아간다.[諸侯之使 垂槖而入 稛載而歸]”는 말이 보인다.

균재지기[稛載之譏]  균재의 기롱. 균재(稛載)는 빈손으로 갔다가 전대에 가득 담아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국어(國語) 제어(齊語)에 “제후의 사신들이 올 때는 빈 자루로 왔다가, 갈 때에는 수레에 가득 싣고 돌아간다.[諸侯之使 垂槖而入 稛載而歸]”란 말이 보인다.

균적[均糴]  송대(宋代)에 민간에서 곡식을 구매하기 위해 시행한 제도로 재산의 정도에 따라 등수를 나눈 다음 식량을 할당하여 사들였는데, 구매 가격이 왕왕 시가(市價)보다 낮았다. 휘종(徽宗) 정화(政和) 3년에 비로소 섬서(陝西)에 시행하였다가 뒤에 제로(諸路)로 확대하여 시행하였음.

균전[均田]  중국 북위 때 시작되어 당나라 때까지 시행(施行)된 토지 제도이다. 나라의 모든 땅을 공유지로 삼고 백성에게 고르게 경작지를 나누어주고 세금을 받았다.

균전사[均田使]  백성의 부담을 공평하게 할 목적으로 토지의 등급을 다시 사정하기 위하여 지방에 파견하던 어사이다. 수령의 범죄를 문초할 때 수령이 당상관(堂上官)일 경우에는 왕에게 보고하여 처단하고 당하관일 경우에는 스스로 즉석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대단한 권한이 부여되었다.

균정[鈞庭]  옥황상제의 궁전을 말한다. 옥황상제가 사는 곳을 균천(鈞天)이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유시(有始)에 “하늘의 중앙을 균천이라 한다.[中央曰鈞天]”고 하였다.

균제방정[均齊方正]  대학장구(大學章句) 전(傳) 10장(章)의 주(註)에 “군자가 반드시 그 같은 바를 인하여 자신을 미루어 남을 헤아려서 상대와 나의 사이로 하여금 각기 분수와 소원을 얻게 하니, 그렇게 하면 상하와 사방이 똑 고르고 방정하여 천하가 평해질 것이다.[君子 必當因其所同 推以度物 使彼我之間 各得分願 則上下四方 均齊方正 而天下平矣]”라고 하였다.

균주[筠州]  당나라 때 설치된 옛 지명.

균준[菌蠢]  균준(菌蠢)은 영지버섯이다.

균준[菌蠢]  지(芝)의 일종인 서초(瑞草)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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