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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엽정수[橘葉井水]~귤유시노[橘柚是奴]~귤정[橘井]


귤엽정수[橘葉井水]  옛날 신선인 한(漢) 나라의 소선공(蘇仙公)이 우물물과 귤잎으로 병을 치료한 고사이다. 여지기승(輿地紀勝)에 “소선공이 일찍이 신선이 되어 떠나가면서 그 어머니 반씨(潘氏)에게 이르기를 ‘명년에 이 침현(彬縣)에 재앙이 있어 큰 전염병이 유행할 것이니, 어머니는 귤잎을 우물물에 달여서 마시십시오.’라고 하였다. 과연 다음해에 큰 전염병이 돌았는데, 고을 사람들이 그 말을 따라 다투어 귤잎을 달여 마시니, 전염병이 즉시 나았다.”고 하였다.

귤유[橘柚]  귤과 유자.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작은 것은 귤이라 하고, 큰 것은 유자라고 하는데 나무에 가시가 있고 겨울에 시들지 않으며 잎은 푸르고 꽃은 희며 열매는 노랗다. 둘이 모양은 비슷하지만 등자(橙子)는 아니다.[小曰橘大曰柚樹有刺冬不凋葉靑花白子黃亦二樹相似非橙也]”라고 하였다.

귤유[橘柚]  귤과 유자로 고향, 또는 선영(先塋)을 의미한다. 송나라 육유(陸游)의 추래익각완건시일출유의중심적잡부오자(秋來益覺頑健時一出遊意中甚適雜賦五字)에 “어디가 나의 집이던가. 남쪽으로 옛 경호에 임했어라. 동산 숲에는 귤과 유자 드리웠고, 문 앞에는 오동잎이 떨어지네.[何許是吾廬, 南臨古鏡湖. 園林垂橘柚, 門巷落楸梧.]”라고 하였다.

귤유시노[橘柚是奴]  감귤을 남자종이라 한 것은, 삼국 시대 오나라의 단양태수(丹陽太守) 이형(李衡)이 일찍이 무릉(武陵) 용양(龍陽)의 범주(氾洲) 가에 감귤 1천 그루를 심어 놓고, 임종 시에 자식에게 당부하기를 “네 모친이 내가 치산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렇게 곤궁해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범주 가에 목노 천 그루를 심어 놓았으니, 너에게 의식은 책임 지우지 않을 것이다.[汝母惡我治家 故窮如是 吾州里有千頭木奴 不責汝衣食]”라고 하여 감귤나무를 목노(木奴)라 칭했던 데서 온 말이다. <三國志 卷48 吳書 三嗣主傳>

귤유지포[橘柚之包]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귤과 유자는 꾸러미로 싸 두었다가 천자가 바치라고 하면 바친다.[厥包橘柚 錫貢]”라는 말이 나온다.

귤유회이북위지[橘踰淮而北爲枳]  주례(周禮) 고공기 서(考工記序)에 “감귤이 회수를 넘어 북으로 가면 탱자로 변한다.[橘踰淮而北爲枳]”고 하였다. 전하여 사람도 혹 주위 환경에 따라 성질이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귤정[橘井]  귤정은 한(漢)나라의 신선인 소선공(蘇仙公)이 우물물과 귤잎으로 병을 치료한 고사이다. 여지기승(輿地紀勝)에 “소선공이 일찍이 신선이 되어 떠나가면서 그 어머니 반씨(潘氏)에게 이르기를, ‘명년에 이 침현(郴縣)에 재앙이 있어 큰 전염병이 유행할 것이니, 어머니는 귤잎을 우물물에 달여서 드십시오.’ 하였다. 과연 다음 해에 큰 전염병이 돌았는데, 고을 사람들이 그 말을 따라 다투어 귤잎을 달여 마시니 전염병이 즉시 나았다.” 하였다.

귤정[橘井]  의사, 의원을 이르는 말이다. 진(晉)나라 소탐(蘇眈)이 귤나무를 심고 우물을 파서 병자에게 귤나무 잎을 먹이고 우물물을 마시게 해서 병을 고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유서찬요(類書纂要)에 “진(晉)나라 사람 소탐(蘇耽)이 귤나무를 심고 우물을 파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였다. 그 당시 몸이 아픈 사람은 그 귤나무 잎을 먹고 그 우물물을 마시면 그 즉시 병이 나았다. 사람들이 그를 귤정(橘井)이라 불렀다.[晉蘇耽種橘鑿井以療人疾. 時疾病者, 食橘葉飮泉水, 卽愈. 號橘井.]”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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