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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경로[金莖露]~금경록[金鏡錄]~금경서[金鏡書]~금경천추[金鏡千秋]


금경공유로[金莖空有露]  재질을 활용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했다는 말이다. 금경(金莖)은 승로반(承露盤)을 받쳐 세우고 있는 구리 기둥을 말한다.

금경로[金莖露]  금경(金莖)은 한 무제(漢武帝)가 세웠던 승로반(承露盤)의 동주(銅柱)를 가리킨다. 한 무제가 일찍이 신선을 사모한 나머지, 건장궁(建章宮)에 동(銅)으로 선인장(仙人掌)을 만들어 세워서 승로반을 받쳐 들고 이슬을 받게 하여 그 이슬을 옥가루[玉屑]에 타서 마셨던 데서 온 말이다.

금경로[金莖露]  금경은 동주(銅柱)를 가리킨 것으로, 한 무제(漢武帝)가 일찍이 건장궁(建章宮)에다 동선인(銅仙人)을 세워서 동반(銅盤)을 받들어 감로(甘露)를 받도록 만든, 즉 승로반(承露盤)의 이슬을 가리키는데, 한 무제는 이것을 마시어 장수(長壽)를 기원했다.

금경로[金莖露]  동주(銅柱)를 세우고서 받은 이슬을 이르는데, 전설에 이 이슬에 옥설(玉屑: 옥가루)을 타서 마시면 신선(神仙)이 된다고 한다. 한 무제(漢武帝)가 신선설(神仙說)에 미혹하여 건장궁(建章宮) 서쪽에 동주(銅柱)를 세우고 그 위에 승로반(承露盤: 이슬을 받는 소반)을 든 선인(仙人)의 동상(銅像)을 안치하고서, 이슬을 받아 마시면서 장수(長壽)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漢書 郊社志上>

금경록[金鏡錄]  금경의 본래 뜻은 구리거울이다. 당나라 현종(玄宗)의 생일 때에 신하들이 모두 거울[寶鏡]을 올렸는데, 장구령(張九齡)이 “거울로는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시고 인물로는 길흉을 비추어 보소서.”라고 하면서, 전대(前代)의 흥폐(興廢) 원인을 기술하여 천추금경록(千秋金鏡錄)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올렸다. 천추는, 황제의 생일을 천추절이라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이후로 거울삼을 만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기록하여 군주를 풍자적 수법으로 깨우쳐 주는 문장이나 서적을 가리킬 때에 금경록이라는 어휘를 사용하였다.

금경사낭[金鏡絲囊]  금경은 황제에게 바치는 물건이고, 사낭은 명절에 주고받는 선물이다. 세시광기(歲時廣記) 권3에 “8월 5일은 당 명황(唐明皇)의 생신인데, 천추절(千秋節)이라 불렀다. 왕공(王公)과 외척은 금경을 바치고 서민들은 사낭을 만들어 서로 주고받았다.”라고 하였다.

금경상장[禽慶尙長]  금경과 상장은 모두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들로 친하게 지낸 친구였다. 상장은 노자(老子), 주역(周易)에 정통한 학자였으나 일찍부터 은거하여 벼슬하지 않았다. 그가 딸 다섯을 모두 시집보낸 뒤에는 가사(家事)를 단절하고서 친구인 북해(北海)의 금경과 함께 오악(五嶽) 등의 명산을 주유(周遊)했는데, 아무도 그들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금경서[金鏡書]  당 태종(唐 太宗)이 정관(貞觀) 2년(628년) 정월에 지은 책으로, 일명 금경술실록(金鏡述實錄)이라고도 한다. 총 1권이며, 치세의 도를 논한 책이다. 지금은 일실되었다. <玉海 卷28 聖文>

금경천추[金鏡千秋]  금경천추는 천추의 거울[千秋金鏡]이란 말과 같은 뜻으로 역사서를 가리킨다.

금경항해[金莖沆瀣]  한 무제가 장생불사의 선방(仙方)을 얻고자 높은 동주(銅柱)를 세워 그 끝에 선인장(仙人掌)을 만들고 감로(甘露)를 받아 마시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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