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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錦溪]~금계[金界]~금계[金鷄]~금계[金雞]


금계[錦溪]  충청남도 금산(錦山)의 옛 지명이다.

금계[金鷄]  금계는 금계의 깃으로 꾸며 만든 병풍이나 장막이다. 당서(唐書) 안녹산전(安祿山傳)에 “제(帝)가 근정루(勤政樓)에 올라가서 장막 왼쪽에 금계대장(金鷄大章)을 베풀고 앞에는 특별한 의자를 놓고 안녹산을 그곳에 앉게 했다.”라고 하였다.

금계[錦鷄]  형상(形狀)과 관모(冠毛)가 마치 꿩처럼 화려하게 생긴 일종의 새인데, 인가(人家)에서 흔히 완상용(玩賞用)으로 기른다.

금계[金谿]  금계는 육구연(陸九淵)의 출생지로 육구연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그의 자는 자정(子靜), 호는 존재(存齋)이며 상산(象山)에서 강학(講學)한 관계로 상산거사(象山居士)라고도 한다. 주자학파의 성즉리설(性卽理說)에 반대하여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제창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개별적 지식의 추구, 정신 기능의 세밀한 분석, 경전 주석의 정리 등은 지엽적인 일로 보는 경향이 높았다.

금계[金谿]  육구연(陸九淵)은 송 금계인(金谿人)으로 자는 자정(子靜), 건도(乾道) 진사로 관은 지형문군(知荊門軍)에 이르렀으며 귀계(貴谿)의 상산(象山)에 살아서 상산 선생이라 불린다. 일찍이 주희와 더불어 아호(鵝湖)에서 회강(會講)하였는데 의논이 많이 합하지 못하여 주희는 도문학(道問學)을 중히 여기고 구연은 존덕성(尊德性)을 중히 여겼으며, 주희는 주경(注經)을 좋아하는데 구연은 “학이란 진실로 도를 안다면 육경(六經)이 모두 나의 주각(注脚)이다.”라고 하였다.

금계[金雞]  금계는 금계(金鷄)로도 쓴다. 금계는 전설상의 신조(神鳥) 이름이다. 동쪽 바다 먼 곳에 부상(扶桑)이 있는데, 이곳에 옥계(玉鷄)가 있고, 이 옥계가 울면 금계가 울고 금계가 울면 석계(石鷄)가 울고 석계가 울고 나면 천하의 모든 닭들이 따라서 운다고 한다. 금계는 태양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였다. 부상은 원래 동쪽 해 뜨는 곳에 산다는 신목(神木) 이름인데 동쪽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였다.

금계[金鷄]  금계는 천상(天上)의 금계성(金鷄星)에 있다는 전설상의 신계(神鷄)이다. 이 닭이 울면 인간 세상의 닭들이 모두 따라서 운다고 한다. 신이경(神異經) 동황경(東荒經)에 “부상산(扶桑山)에 옥계(玉鷄)가 있는데, 옥계가 울면 금계가 울고 금계가 울면 석계(石鷄)가 울고 석계가 울면 천하의 모든 닭이 울고 조수(潮水)가 호응한다.”라고 하였는데, 후세에 수탉이 새벽을 알리는 미칭이 되었다.

금계[金鷄]  천계(天鷄)라고도 하며 해를 의미한다. 술이기(述異記)에 나오는 전설상의 닭으로 도도(桃都)라는 거목 위에 살면서 해가 처음 뜰 때 이 닭이 울면 천하의 모든 닭이 뒤따라 울기 시작한다고 한다.

금계[金鷄]  천상에 산다는 금계성(金鷄星)의 닭을 가리킨다. 전설에 의하면, 이 닭이 천상에서 새벽을 알리면 지상의 모든 닭들이 그 소리에 응하여 다 같이 운다고 한 데서, 전하여 수탉을 가리킨다. 한유(韓愈)의 도원도(桃源圖) 시에 “한밤중에 금계가 꼬끼오 하고 울어 대더니, 태양이 금방 솟아올라 나그네 마음 놀랐네.[夜半金鷄啁哳鳴 火輪飛出客心驚]”라고 하였다. <韓昌黎集 卷3>

금계[金鷄]  금계는 머리를 황금으로 장식한 닭인데, 옛날에 사면령을 반포할 적에 대나무에 금계를 매달아 두었기 때문에 사면령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이는 하늘에 있는 금계성(金鷄星)이 움직이면 죄수를 사면한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신당서(新唐書) 권48 백관지(百官志)에 “죄수를 사면하는 날 금계를 꾸며 남쪽에 거는데, 7척쯤 되는 대나무에 황금으로 머리를 꾸민 4척쯤 되는 닭을 매단다.”고 하였다. 이백(李白)의 시 유야랑증신판관(流夜郞贈辛判官)에 “시름겹게 나 멀리 야랑으로 귀양 가니, 언제나 금계 걸려 사면받고 돌아올까.[我愁遠謫夜郞去 何日金雞放赦回]”라는 내용이 있다.

금계[金鷄]  조정에서 사면령(赦免令)이 내려지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 사면령을 반포할 적에 금계를 장대 끝에다 올려 두고서 반포하였다. 수서(隋書) 형법지(刑法志)에 “죄수를 석방시킬 때 창합문(閶闔門) 밖 우측에 금계와 북을 설치하여 북소리가 일천 번 울린 뒤에 죄수의 가쇄(枷鎖)를 풀어 준다.”하였고, 송사(宋史) 의위지(儀衛志)에는 “하늘의 천계성(天鷄星)이 움직이면 나라에서 사령(赦令)이 내린다 하여 육조(六朝) 이래로 금계를 사용했다.”라고 하였다. 황정견(黃庭堅)의 죽지사(竹枝詞)에 “두견은 더 울려야 피 말라서 눈물 없는데, 어느 때나 금계가 구주를 사면할까.[杜鵑無血可續淚 何日金鷄赦九州]”라고 하였다.

금계[金鷄]  황금으로 만든 닭 모양의 의장인데, 고대에 사면의 조서를 반포할 때 세웠다. 태평어람(太平御覽) 권98에 삼국전략(三國典略)을 인용하기를 “제(齊)나라 장광왕(長廣王) 담(湛)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남궁(南宮)에서 사면령을 내리고 원년을 고쳤다. 그날 사면령을 반포하기 전에 문밖에 금계를 세워 놓았는데, 송 효왕(宋孝王)이 그 뜻을 몰라 광록대부(光祿大夫) 사마응지(司馬膺之)에게 물어보았다. 사마응지가 대답하기를 ‘해중성점(海中星占)을 살펴보니, 천계성(天鷄星)이 동하면 마땅히 사면을 한다고 하였으므로 제왕이 닭을 상징으로 삼는 것입니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금계[金界]  사찰의 별칭. 황금을 땅에 깐 지역이라는 뜻으로 사원을 가리킨다. 금지(金地) 혹은 금전(金田)이라고도 한다. 인도 사위성(舍衛城)의 수달 장자(須達長者)가 석가(釋迦)의 설법을 듣고 매우 경모한 나머지 정사(精舍)를 세워 주려고 기타 태자(祇陀太子)의 원림(園林)을 구매하려고 하였다. 이에 태자가 장난삼아서 “황금을 이 땅에 가득 깔면 팔겠다.”라고 하였는데, 수달 장자가 실제로 집에 있는 황금을 코끼리에 싣고 와서 그 땅에 가득 깔자, 태자가 감동하여 그 땅을 매도하는 한편 자기도 원중(園中)의 임목(林木)을 희사하여 마침내 최초의 불교 사원인 기원정사(祇園精舍)를 건립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大唐西域記 卷6>

금계[金鷄]  신라 탈해왕(脫解王) 9년에 시림(始林)에서 이상한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 사람을 보내어 보니 나뭇가지에 금궤(金樻)가 있고, 그 속에 아이가 들어 있었다는 고사가 있다.

금계[金雞]  신라를 말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호공(瓠公)이 월성(月城) 서쪽 마을을 지나가고 있을 때에 시림(始林) 숲 속 나뭇가지에 황금 궤짝이 걸려 있고 밝은 빛이 그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또 흰 닭이 나무 아래에서 울었다. 호공이 왕에게 아뢰자 왕이 가서 궤짝을 열어 보았는데 그 안에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이름을 알지(閼智)라고 지었다.” 하였다. 알지의 탄생을 계기로 이곳을 계림(鷄林)이라고 고쳐 불렀고, 일정 기간 동안 계림은 신라의 국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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