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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 아궁이 <전국책 : 조책>


위(衛)나라의 영공(靈公)이 옹저(雍疸), 미자하(彌子瑕)를 가까이 하였다. 두 사람은 영공의 위세를 업고 멋대로 행동하며, 좌우 신하들이 영공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복도정(復塗偵)이 영공에게 말하였다.

“언젠가 소신은 꿈에서 주군을 뵌 적이 있습니다.”

영공이 물었다.

“어떤 꿈을 꾸었는가?”

복도정이 말하였다.

“꿈속에서 조왕님[竈君: 아궁이 주군]을 보았습니다.”

영공이 버럭 화를 내며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꿈에서 주군을 보는 자는 꿈에 태양을 본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꿈에서 조왕님을 뵈었다’고 하면서 ‘주군[君]’이라고 하였다. 그 설명이 타당하면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

복도정이 대답하였다.

“태양은 천하를 두루 비추는 것으로 어떤 한 가지 물건으로 태양을 가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궁이는 그렇지 못하여 어떤 사람이 앞에서 불을 쬐고 있으면 뒤에 있는 사람은 그 불을 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소신은 누군가가 주군의 앞을 가로막고 불을 쬐고 있지 않은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꿈에서 조왕님을 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공이 말하였다.

“옳은 말이다.”

그리는 즉시 옹저와 미자하를 축출하고, 그 대신 사공구(司空狗)를 세웠다.

<전국책 : 조책(3)>


衛靈公近雍疸(癰疽)・彌子瑕. 二人者, 專君之勢以蔽左右. 復塗偵謂君曰: “昔日臣夢見君.” 君曰: “子何夢?” 曰: “夢見竈君.” 君忿然作色, 曰: “吾聞夢見人君者, 夢見日. 今子曰夢見竈君而言君也, 有說則可, 無說則死.” 對曰: “日幷燭天下者也, 一物不能蔽也. 若竈則不然, 前之人煬, 則後之人無從見也. 今臣疑人之有煬於君者也, 是以夢見竈君.” 君曰: “善.” 於是, 因廢雍疸・彌子瑕, 而立司空狗.  <戰國策 : 趙策(三)>


  • 미자하[彌子瑕]  위 영공(衛靈公)의 행신(幸臣: 임금의 총애를 받는 신하)이며 그의 아내는 자로(子路)의 처형제(妻兄弟)라 한다.
  • 전횡[專橫]  권력이나 권세를 홀로 쥐고서 자기 마음대로 함.
  • 조왕신[竈王神]  부엌의 길흉화복을 맡아보는 신.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옥황상제께 고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불신[火神]이다. 부엌신・아궁이신・부뚜막신 등으로도 부른다.
  • 사공구[司空狗]  위 영공(衛靈公)의 신하. 사조(史朝)의 아들 사구(史狗)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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