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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굴[金幱窟]~금란굴[金襴窟]~금란금궤[金卵金櫃]


금란굴[金幱窟]  강원도 통천군 통천면에 있는 굴이다. 안축(安軸)의 근재집(謹齋集) 권1 금란굴시(金幱窟詩)의 소서(小序)에 “통주 남쪽 교외에 꼭대기 벗겨진 봉우리가 둥그스름한 것이 동쪽으로 큰 바다에 임했는데, 그 봉우리의 깎아지른 벼랑에 굴이 있으니, 넓이가 7, 8자는 되고 깊이가 10여 보는 된다. 쳐다보면 양쪽 벽이 나직하게 합하였고, 내려다보면 물 깊이를 알 수 없다. 굴이 원래 깊고 물기에 젖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으슥하고 축축하며 바람이 일면 놀란 물결이 들이쳐서 갈 수가 없다. 서로들 전하여 오는 말이 ‘이 굴은 원래 관음보살의 진신이 항상 거처하는 곳이므로 사람이 지성으로 귀의하면 보살이 바윗돌에 나타나고 푸른 새가 날아오니 이래서 신령하게 여긴다.’라고 한다. 내가 작은 배를 타고 굴에 도착했는데, 이날은 다행히도 풍랑이 고요하게 멎었다. 굴 안으로 깊이 들어가서 자세하게 그 형상을 보니, 굴 구석에 석벽이 석 자쯤은 높고, 돌무늬가 누렇고 아롱다롱하여 중들의 이른바 가사의 금란과 같고 면목견비의 몸체 형상은 없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관음보살의 진신이 돌 아래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다. 또 돌이 높고 그 빛이 좀 푸른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연대라고 한다. 아, 이것이 과연 관음보살의 진신인가. 돌무늬가 부처의 의복 같다고 하여 존경한다고 하면 옳겠지만, 이것을 가지고 관음보살의 진신이라고 한다면 나는 믿지 못하겠다.[通州南郊, 有禿峯穹隆, 而東臨大海, 峯之懸崖有窟, 廣可七八尺, 深可十餘步. 仰而兩壁互合, 俯而水深不測, 窟旣深而水氣浸漬, 故常幽暗淋漓, 有風則驚濤洶湧 不可到. 相傳云, 窟是觀音眞身常住處, 人有至誠歸心, 則眞身現于巖石, 而靑鳥飛來, 以此靈之. 余乘小舟到窟, 是日幸風浪靜息, 深入窟中, 細觀其狀, 窟之隩, 石壁高三尺許, 石紋黃而爛斑, 如浮屠所謂袈裟之金幱, 無面目肩臂體相. 人見此, 以爲觀音眞身現于石下. 有石磊嵬而其色微靑者, 人以此爲蓮臺. 噫, 此果是觀音眞身耶. 若曰, 石紋如佛服, 故尊敬則可矣, 以此爲觀音眞身, 則余未之信也.]”라고 금란굴의 모습과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금란굴[金襴窟]  총석정(叢石亭)에서 바다로 나가 남쪽으로 10여 리 가면 있는 굴로, 나무 없는 민둥 봉우리의 낭떠러지에 있다. 너비는 7, 8자, 깊이는 10여 보(步) 쯤이며, 굴의 네 모퉁이의 석벽은 높이가 3자이다. 돌의 무늬는 노란색인데, 아롱져서 금색으로 무늬가 있는 가사(袈裟)와 같다고 한다. ‘총석정’은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고저읍(庫底邑) 총석리(叢石里) 바닷가에 있는 정자 이름으로, 금강산 북쪽에 있다. 넓은 의미에서는 주상절리(柱狀節理)로 이루어진 바위기둥들과 절벽을 일컫는다. 총석 중 바다 가운데 있는 사석주(四石柱)를 특히 사선봉(四仙峰)이라고 하는데, 신라의 술랑(述郞)・영랑(永郞)・안상랑(安詳郞)・남랑(南郞)의 네 화랑도가 이곳에서 놀며 경관을 감상하였다는 전설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으뜸으로, 근대의 서화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쓴 ‘총석정’이라는 현판 글씨가 남아 있다.<燃藜室記述 別集 卷16 地理典故 山川形勝 金襴窟>

금란금궤[金卵金櫃]  금란(金卵)의 일은 하늘에서 떨어진 황금색의 알에서 나왔다는 가락국(駕洛國)의 시조 김수로(金首露)의 탄생 설화를 가리키고, 금궤(金櫃)의 일은 계림(鷄林)에서 발견된 황금색 궤짝에서 나왔다는 신라 김씨의 시조 김알지(金閼智)의 탄생 설화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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