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금리[禁裏]~금리[檎李]~금리경인구[錦里驚人句]~금리두곡[錦里杜曲]


금리[禁里]  금리는 궁궐 주변을 말한다.

금리[錦里]  금리는 금성(錦城)으로 나주를 가리킨다.

금리[禁吏]  금제 사항을 적은 금란패(禁亂牌)를 가지고 금령을 범한 사람을 잡아들이는 서리를 말한다.

금리[禁吏]  의금부와 사헌부에 속하여 도성 안의 범법 행위를 단속하던 서리를 이른다.

금리[禁裏]  금중(禁中)과 같은 말이다. 황제가 거처하는 궁궐 안을 가리킨다. 궁궐은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리[錦里]  금리는 사천성 성도현(成都縣) 서남쪽에 있는 금관성(錦官城)을 말한다. 일찍이 두보(杜甫)가 그곳에 살면서 자칭 금리선생(錦里先生)이라고 하였다. 두보(杜甫)의 시 남린(南隣)에 “금리선생이 오각건을 쓰고, 동산에서 토란과 밤을 거두니 온전히 가난하지는 않구나.[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未全貧]”라고 하였다.

금리[錦里]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두보가 금관성(錦官城)에 살면서 자칭 금리 선생이라 했다. 그의 시구에 “금리 선생이 오각건을 쓰고 동산에서 토란과 밤을 거두니 아주 가난하지만은 않구나.[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未全貧]”라는 표현이 있다. 두보는 그 전에 동곡(同谷)의 율정(栗亭)에 거처하면서 먹을 것이 없어 도토리를 주워 끼니를 잇기도 했다.

금리[錦里]  금성(錦城)으로 줄여 부르기도 하는 금관성(錦官城), 즉 성도(成都)의 별칭이다. 이상은(李商隱) 시 주필역(籌筆驛)에 “지난날 금성의 무후사를 지날 때, 양보음을 읊조리며 그의 한을 위로했네[他年錦里經祠廟 梁父吟成恨有餘]”라고 하였다.

금리[檎李]  왕희지(王羲之)의 서첩(書帖) 이름인 내금청리첩(來檎靑李帖)의 약칭이다. 이 서첩 첫머리에 ‘내금청리(來檎靑李)’란 말이 있으므로 이렇게 칭한 것이라고 한다.

금리경인구[錦里驚人句]  금리(錦里)는 두보(杜甫)가 살았던 성도(成都) 금관성(錦官城)의 별칭으로 전하여 두보를 가리키고, 경인구(驚人句)는 곧 두보(杜甫)의 강상치수여해세요단술(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 시에 “나는 성질이 아름다운 시구를 지나치게 좋아해, 남을 놀래키지 못하면 죽어도 마지않는데, 늘그막의 시편은 다 부질없는 흥취일 뿐이니, 봄이 오매 꽃과 새들은 너무 시름하지 말거라.[爲人性癖耽佳句 語不驚人死不休 老去詩篇渾漫興 春來花鳥莫深愁]”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남을 놀래킬 만한 뛰어난 시구를 의미한다.

금리동서양[錦里東西瀼]  금리선생(錦里先生)은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당(唐)나라의 시인 두보(杜甫)를 이른다. 두보의 시에 “금리 선생이 오각건을 쓰고 동산에서 토란과 밤을 수확하니 온전히 가난하지는 않구나.[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未全貧]”라는 시구가 있다. 양수(瀼水)는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에 있는 내 이름으로, 두보가 이곳의 산천을 몹시 좋아하여 떠나지 못하고 양수의 동쪽과 서쪽으로 세 번이나 집을 옮겼다. <杜少陵詩集 卷15>

금리두곡[錦里杜曲]  금리는 금강(錦江) 가의 마을이란 뜻으로, 금리선생은 두보(杜甫)가 자칭한 말이다. 두보(杜甫)의 남린(南隣) 시에 “금리 선생은 오각건을 쓰고서, 전원에서 토란 밤 거두니 가난하지만은 않구나.[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不全貧]” 하였고, 또 곡강(曲江) 시에 “스스로 결단한 생애 하늘에 물을 것 없어라, 두곡에 다행히 상마의 전원이 있고말고.[自斷此生休問天 杜曲幸有桑麻田]”라고 하였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