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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객[金馬客]~금마국[金馬國]~금마대조[金馬待詔]


금마[金馬]  금마는 전라도 익산(益山)의 옛 이름이다. 기자(箕子)의 41대손인 후조선(後朝鮮)의 임금 기준(箕準)이 일찍이 위만(衛滿)의 난리를 피해 바다에 떠서 남으로 내려가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 마한(馬韓)이라 칭했는데, 뒤에 백제 시조 온조(溫祚)가 이곳을 병합한 이후부터 금마저(金馬渚)로 불렸던 데서 온 말이다.

금마[金馬]  금마는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의 대문이다. 문 앞에 구리로 만든 말이 있으므로 이렇게 불렀다. 조칙(詔勅)을 작성하는 일을 맡은 문학에 뛰어난 인재가 벼슬하여 이곳으로 드나들었으므로, 후에는 한림원이나 한림학사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금마[金馬]  중국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의 대문인 ‘금마문(金馬門)’의 준말로, 문 앞에 구리로 만든 말이 있으므로 이렇게 불렀다. 동방삭(東方朔)・주보언(主父偃)・엄안(嚴安) 등 조칙(詔勅)을 작성하는 일을 맡은 관리들이 황제의 조서(詔書)를 기다리거나 드나들던 문이다. 따라서 후에 한림원(翰林院)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금마[金馬]  한 대(漢代)의 궁문 이름으로 ‘금마문(金馬門)’이라고도 한다. 사기・골계열전(史記滑稽列傳)에서 “금마문은 벼슬관서의 문이다. 문 옆에 동마가 있어 그것을 일러 금마문이라 하였다[金馬門者, 宦署門也. 門傍有銅馬, 故謂之曰金馬門]”라고 말하고 있다. 한대에는 초징되어 온 사람들은 모두 대조공거(待詔公車)였는데, 그 중 가장 재능이 우수하고 특이한 사람은 대조금마문(待詔金馬門)이라 명하였다. 사혜련(謝惠連)의 연주(連珠)에서 “금마에 올라 이름을 떨치네[登金馬而名揚]”이라 하였다.

금마[金馬]  한대(漢代) 금마문(金馬門)의 약칭으로, 옥당전(玉堂殿)과 함께 문학지사(文學之士)가 출사(出仕)하던 곳이다. 전하여 한림원(翰林院)의 별칭으로 쓰인다.

금마객[金馬客]  금마는 금마옥당(金馬玉堂)의 준말로, 금마객은 한림(翰林)의 직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금마국[金馬國]  지금의 전라북도(全羅北道) 익산(益山)의 고호(古號)이다.

금마군[金馬郡]  금마군은 전라도 익산(益山)의 옛 지명이고, 기준성(箕準城)은 곧 익산의 구성(舊城)을 가리키는데, 전설에 의하면 기준(箕準)이 쌓은 것이기 때문에 기준성이라 불렀다고 한다.

금마대조[金馬待詔]  금마문(金馬門)의은 미앙궁(未央宮)의 문 이름인데, 한대(漢代)에 천자의 학사들이 정식 관직 없이 금마문에서 대기하면서 천자의 고문(顧問)에 대비하였다. 이후로 대조는 관명으로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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