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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禁省]~금성[錦城]~금성[金星]~금성[金聲]~금성[金城]


금성[禁省]  궁궐의 각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금성[禁城]  궁성.

금성[錦城]  금성은 파촉(巴蜀) 성도(成都)에 있는 금관성(錦官城)으로,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남쪽에 있다. 성도(成都)의 별칭으로 쓰인다. 성도에 대성(大城)과 소성(少城)이 있었는데, 옛날에 소성에 비단 짜는 것[織錦]을 관장하는 관서가 있었으므로 금관성이라고 불렀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금성[錦城]  전라남도 나주(羅州)의 옛 이름이다. 고려 태조의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吳氏)는 목포(木浦)에서 났다. 태조가 수군(水軍)을 거느리고 나주로 출진하던 중 목포에 대었다가 후가 빨래하는 것을 보고 불러 관계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혜종(惠宗)이다. 뒤에 그 땅에 용흥사(龍興寺)를 지었다.

금성[金聲]  가을에 불어오는 바람 소리라는 말이다. 가을은 오행(五行) 중에 금(金)에 해당한다.

금성[金星]  태백성(太白星)의 이칭인데, 고대에 금성은 전쟁의 상징으로 여겨 금성의 위치와 광채를 보고 전쟁에 관해 점을 쳤다. 광채가 생동하면 전쟁이 일어나고 광채가 없으면 조용한 것으로 알았다.

금성[金城]  금성은 금성탕지(金城湯池)를 가리키는데, 쇳덩이로 쌓은 성과 끓는 물이 흘러 성을 보호하는 견고한 성지(城池)를 말한다. 한서(漢書) 권45 괴통전(蒯通傳)에 “반드시 성을 고수하려고 한다면 모두 금성과 탕지로 만들어야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금성[金城]  굳고 단단한 성채. 금성은 한 소제(漢昭帝) 시원(始元) 6년(기원전 81)에 설치된 군으로, 훗날 험준한 성의 대명사가 되었다. 후한(後漢)의 응소(應劭)가 말하기를 “처음에 성을 축조할 때 금을 얻었기 때문에 ‘금성’이라고 하였다.” 하였고, 진(晉)나라 사람 설찬(薛瓚)이 말하기를 “금은 그 견고함을 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묵자(墨子)에 ‘금성탕지(金城湯池)’라는 말이 있다.”고 하였다. <水經注 卷2 河水>

금성[金城]  쇠로 만든 성이라는 뜻으로 산하가 요새지(要塞地)로 되어 견고함을 말한다. 한서(漢書) 괴통전(蒯通傳)에 “모두 쇠로 만든 성과 끓는 못이 되어 공격할 수 없다.[皆爲金城湯池 不可攻也]”라고 하였다.

금성[金城]  한 무제(漢武帝) 때 조충국(趙充國)이 중국을 침략해 온 오랑캐를 치기 위해 금성(金城)에 들어가서 둔전(屯田)을 경영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여 성공한 일이 있다. <漢書 卷69 趙充國傳>

금성[金城]  도성의 이칭으로 조정을 가리킨다.

금성[金聲]  맑은 쇳소리로, 시문이 잘된 것을 의미한다. 진(晉)나라 손작(孫綽)이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를 지으니 글이 매우 잘되었다. 그가 벗 범영기(范榮期)에게 보이며 “자네가 시험 삼아 땅에 던져 보게. 금석 소리가 날 것이네.[卿試擲地, 當作金石聲.]”라고 하였다. <晉書 卷56 孫綽列傳>

금성[金城]  전라남도 담양(潭陽)에 있는 산성으로 선조 30년에 수축하고, 효종 4년에 중수(重修)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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