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왈종혁[金曰從革]~금왕지절[金旺之節]~금용[金墉]

금왈종혁[金曰從革]  쇠의 성질은 옛날 그대로 있기도 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기도 함을 말한 것이다. 서경(書經) 홍범(洪範)에 “오행(五行)의 성질은 물은 짜고 아래로 내려가며, 불은 불타고 위로 올라가며, 나무는 곧기도 하고 굽기도 하며, 쇠는 따르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며, 흙은 농사지어 심고 거둔다.[水曰醎下 火曰炎上 木曰曲直 金曰從革 土爰稼穡]”고 하였다.

금왕고악장[今王鼓樂章]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보이는데,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기면 백성이 임금의 풍악을 듣고 좋아하고,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기지 않으면 백성이 오히려 싫어하여, 부자(父子)가 서로 쳐다보지도 않으며, 형제와 처자(妻子)가 이산(離散)한다는 내용이다.

금왕지절[金旺之節]  오행(五行) 중에서 금기(金氣)가 왕성한 절기. 곧, 가을을 이른다.

금요[金遼]  금요의 ‘금’은 여진족(女眞族)이 세운 나라 이름이고, ‘요’는 거란족(契丹族)이 세운 나라 이름이다.

금요홍[擒姚泓]  요홍을 사로잡음. 요홍(姚泓)은 후진주(後秦主) 요흥(姚興)의 아들이다. 요홍(姚泓)이 즉위한 뒤에 형제(兄弟)가 잔살(殘殺)하였다. 의희(義熙) 12년(416)에 유유(劉裕)가 북토(北討)하고, 다음해에 요홍(姚泓)을 남전(藍田)에서 대파하고, 뒤에 장안(長安)에 쳐들어가서 요홍(姚泓)을 잡아 보내 건강(建康)의 저자에서 참수하였다.

금욕[錦褥]  비단으로 만든 침구인 요를 지칭한다.

금용[金墉]  금용은 금용성(金墉城)으로,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현(洛陽縣)의 옛 낙양성(洛陽城) 서북 모퉁이에 있는 성(城)이다. 삼국시대 위(魏)나라 명제(明帝)가 쌓았다. 견고한 성을 뜻하는 금성(金城)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위(魏)・진(晉) 시대에 폐위된 황제・황후들을 유폐하던 곳이다. 진(晉)나라 사마사(司馬師)가 임금 조방(曹芳)을 폐한 뒤 이곳으로 옮겼고, 양후(楊后)와 민회태자(愍懷太子)가 이곳에 유폐되었으며, 조왕 윤(趙王倫)이 찬탈한 뒤 혜제(惠帝)를 이곳에 거처하게 하였다. <讀史方輿紀要 河南 洛陽縣>

금용[金墉]  금용성(金墉城). 금용은 원래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현(洛陽縣)의 옛 낙양성(洛陽城) 서북 모퉁이에 있는 성명(城名)으로, 삼국 시대 위 명제(魏明帝)가 여기에 성을 쌓고 성안에 서궁(西宮)을 두었다. 그 뒤 가평(嘉平) 6년(254)에 사마사(司馬師)가 위주(魏主)인 방(芳)을 폐위시켜 금용에 옮기게 하였고, 함희(咸熙) 2년(265)에 위왕(魏王)이 진(晉)나라에 왕위를 물려주고 금용성에 출사(出舍)하였다. 진나라 때에는 양후(楊后), 민회태자(愍懷太子), 가후(賈侯)를 폐하여 모두 금용성에 유폐시켰고, 조왕 윤(趙王倫)이 왕위를 찬탈하여 혜제(惠帝)를 여기에 유폐시켰다. 이 때문에 금용은 제왕들이 유폐된 장소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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