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용성[金墉城]~금용주락[金容珠絡]~금용지화[金墉之禍]

금용감옥응[金舂撼玉應]  당나라 한유(韓愈)의 시에 “금성이 울리니 옥성이 응하여, 그 향취가 대단히 성하네.[金舂撼玉應, 厥臭劇蕙鬱.]”라고 하였다. <全唐詩 卷342 山南鄭相公樊員外酬荅爲詩其末咸有見及語樊封以示愈依賦十四韻以獻>

금용성[金墉城]  금용성(金墉城)은 삼국 시대 위(魏)나라 명제(明帝) 때에 만든 성으로 254년에 사마사(司馬師)가 위주(魏主) 조방(曹芳)을 폐위하여 이 성에 유폐시켰고, 이후 진(晉)나라 양 태후(楊太后), 민회태자(愍懷太子), 가 태후(賈太后), 혜제(惠帝) 등도 이곳에 유폐되었다.

금용주락[金容珠絡]  금용은 황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불상을 가리키고, 주락은 불상의 신변에 장식한 주옥을 말한다.

금용지론[金墉之論]  조선 광해군(光海君) 때에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자고 제창한 폐모론(廢母論)을 가리킨다. 금용은 중국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성(城) 이름인데, 진 혜제(晉惠帝)의 비(妃)인 가후(賈后)가 황음방자(荒淫放恣)하여 금용성(金墉城)에 유폐(幽廢)되었다.

금용지변[金墉之變]  인목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시킨 일을 말한다. 금용은 본래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현(洛陽縣)의 서북쪽 구석에 있는 성(城)의 이름으로, 삼국 시대 위(魏)나라 명제(明帝)가 여기에 성을 쌓고 성안에 서궁(西宮)을 두었는데, 그 뒤 가평(嘉平) 6년(254)에 훗날 진(晉)나라의 경제(景帝)로 추존된 사마사(司馬師)가 위주(魏主)인 조방(曹芳)을 여기에 유폐시켰고, 진(晉)나라의 양후(楊后), 민회태자(愍懷太子), 가후(賈后)가 모두 여기에 유폐되었다. <讀史方輿紀要 河南 河南府 洛陽縣>

금용지화[金墉之禍]  인목왕후(仁穆王后)가 광해군에 의해 폐출되어 서궁(西宮)에 감금당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금용은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성(城) 이름. 진 무제(晉武帝)는 원 황후(元皇后)가 죽은 뒤에 양(楊)씨를 다시 황후로 맞이하였는데, 양후에게 아들도 없이 무제가 죽으니, 혜제(惠帝)가 그 뒤를 이어 황제가 되고, 양후는 황태후(皇太后)가 되었다. 혜제의 후(后)인 가후(賈后)는 태후의 친정아버지 준(駿)이 집권(執權)하고 있음을 시기하여 준이 태후와 함께 역모(逆謀)를 한다고 모함하여 준의 일족을 죽이고 태후를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만들어 금용성에 유폐시켰다. <晉書 卷31 武悼楊皇后傳>

금용지화[金墉之禍]  폐위(廢位)되는 것을 말한다. 사마사(司馬師)가 위주(魏主) 조방(曹芳)을 폐하고 금용성(金墉城)으로 옮겼으며, 진(晉) 나라 양후(楊后)와 민회태자(愍懷太子)가 가후(賈后)가 폐위됨에 미쳐 모두 금용성으로 옮겨졌으며, 조왕 륜(趙王倫)이 혜제(惠帝)를 폐한 뒤 금용성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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