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우[襟牛]~금우[金牛]~금우불래[今雨不來]~금우옥곤[金友玉昆]

금우[今雨]  금우는 두보(杜甫)의 시 추술(秋述)에 “평소 나를 찾아오던 사람들이, 옛날에는 비가 내려도 오더니, 지금은 비가 내리면 오지 않는다.[常時車馬之客, 舊雨來今雨不來.]”라고 한 구절에서 온 말이다. 새로 사귄 벗 또는 새로 사귄 벗이 오랜 벗보다 우정이 깊지 못함을 뜻한다.

금우[襟牛]  학문이 얕음을 한탄한다는 뜻이다. 한유(韓愈)의 시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에 “사람이 고금의 일을 통달하지 못하면 말이나 소가 옷을 입은 것과 같다.[人不通古今 馬牛而襟裾]”라고 하였다.

금우[金牛]  진 혜왕(秦惠王)이 촉을 정벌하고 싶었으나 길이 없기에, 꾀를 내어 돌로 다섯 마리 소를 깎아 만들고 소의 항문 밑에 금을 놓아두었다. 촉 사람들이 과연 속아서 돌소가 황금 똥을 눈다고 여겨 다섯 사람의 역사, 즉 오정역사(五丁力士)를 시켜서 돌소를 끌고 오게 하니, 이에 촉 땅으로 통하는 길이 생겼고 진왕(秦王)이 장의(張儀) 등을 파견하여 촉을 정벌했다. <秦惠王本紀>

금우도[金牛道]  옛날 촉도(蜀道)에 있던 잔도(棧道)의 이름으로 섬서성(陝西城) 면현(勉縣) 서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사천성(四川省) 검각현(劍閣縣)의 검각관문(劍閣關門)까지를 금우도(金牛道)라 하였다.

금우로착[金牛路鑿]  금우는 금똥을 눈다는 소이다. 전국 시대 진 혜왕(秦惠王)은 촉(蜀)을 치려했으나 길을 알지 못하므로 돌을 깎아 다섯 마리의 소를 만들어 뒤에 금을 넣어 놓고는 이것을 촉도에 갖다 놓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는 돌소가 금똥을 눈다고 하자, 이 소문을 들은 촉왕(蜀王)은 천여 명의 군사와 다섯 명의 역사(力士)를 동원하여 성도(成都)로 운반해 갔다. 이 때문에 길이 뚫려, 진나라는 마침내 이 길을 따라 촉을 공격하여 탈취했으므로 이 길을 금우도(金牛道)라 하였다.<水經 沔水注>

금우불래[今雨不來]  당(唐)나라 때 두보(杜甫)의 추술(秋述)에 “평소 나를 찾아오던 사람들이, 옛날에는 비가 와도 오더니, 지금은 비가 오면 오지 않는다.[常時車馬之客 舊雨來 今雨不來]” 한 데서 온 말로, 새로 사귄 벗을 가리키며 아울러 새로 사귄 벗은 오랜 벗보다 우정이 깊지 못함을 뜻한다.

금우불래구우래[今雨不來舊雨來]  본디 ‘今엔 雨면 不來하네. 舊엔 雨라도 來터니’라는 말이다. 처지가 바뀌자 벗의 우의도 변했음을 뜻한다. 두보(杜甫)가 장안(長安)이 객사에 몸져누워 있을 때 비가 많이 오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상황을 일컬어 “평소에 찾아오던 손님들이 전에는 비가 와도 오더니 이제는 비가 오면 오지를 않는다.[常時車馬之客 舊 雨來 今 雨不來]”라고 한 말을 원용한 표현이다. <全唐文 卷360 秋述>

금우역[金牛驛]  사천성(四川省)과 섬서성(陝西省) 사이에 있는 옛날의 잔도(棧道) 이름으로, 한중(漢中)에서 촉(蜀) 땅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길이다. 진(秦) 나라 혜왕(惠王)이 촉 나라를 치려고 하였으나 길이 없었다. 이에 돌로 소 다섯 마리를 만들고는 그 뒤에다가 금(金)을 놓아둔 다음 ‘소가 금똥을 누었다.’고 소문내니, 촉 나라 사람들이 그 소를 달라고 하였다. 혜왕이 주겠다고 하자, 촉에서 역사(力士) 다섯 명을 보내어 길을 뚫고 끌어오게 하였는데, 진 나라에서는 그 소의 뱃속에다가 무기를 숨겨 보내어 이를 가지고 촉 나라를 쳐서 멸망시켰다. <華陽國志>

금우옥곤[金友玉昆]  훌륭한 형제. 금곤옥우(金昆玉友), 옥곤금우(玉昆金友)와 같은 말이다. 거울이 될 만한 남의 형제를 칭찬하여 이르는 말이다. 남조(南朝) 양(梁)나라 왕전(王銓)이 그 아우 왕석(王錫)과 더불어 효행이 똑같이 드러나니, 사람들이 옥곤금우(玉昆金友)라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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