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琴意]~금의국상[金衣菊裳]~금의상경[錦衣尙褧]

금의[琴意]  금(琴)을 탈 때 나는 소리에 기탁된 뜻을 가리킨다. 왕통(王通)의 중설(中說) 예악(禮樂)에 “중문자(文中子)가 분정으로 놀러가 금을 타고 있을 때 배 위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이 지나가며 말했다. 금 소리에 담긴 뜻이 아름답구나. 슬프면서 따뜻하고 원망하는 것 같으면서 고요하며 강호에 있으면서도 조정에 대한 뜻을 지닌 듯하다.[子游汾亭, 坐鼓琴, 有舟而釣者過曰: 美哉琴意, 傷而和, 怨而靜, 在山澤而有廊廟之志]”라고 하였다.

금의[錦衣]  비단으로 지은 옷. 귀영화(富貴榮華)의 처지를 가리킨다.

금의공자[錦衣公子]  꾀꼬리의 별칭이다.

금의국상[金衣菊裳]  한(漢)나라 소제(昭帝) 때 황곡(黃鵠)이 건장궁의 북쪽에 있는 태액지(太液池)에 날아오자, 소제가 보고는 기뻐하여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 노래에 이르기를 “황곡이 날아와서 건장궁에 앉음이여, 깃은 깨끗하고 걸음걸이는 춤을 추며, 금으로 윗옷 해 입고 국화로 치마 해 입었네.[黃鵠飛兮下建章 羽肅肅兮行蹌蹌 金爲衣兮菊爲裳]”라고 다. <西京雜記 卷1>

금의귀래[錦衣歸來]  금의를 입고 돌아온다는 것은 부귀하게 되어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과 같은 뜻이다.

금의상경[錦衣尙褧]  비단 옷을 입고 기운 옷을 겉에 입는다는 뜻으로, 군자(君子)는 미덕(美德)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금의야행[金衣夜行]  비단(緋緞)옷을 입고 밤길을 간다는 뜻으로, 아무 보람 없는 행동(行動). 입신(立身) 출세(出世)하여 고향(故鄕)으로 돌아가지 않음.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금의옥[錦衣獄]  명(明)나라 때 황제의 직속으로 두었던 금의위(錦衣衛)의 옥으로, 악명이 높았던 형옥(刑獄)이다.

금의옥대[錦衣玉帶]  비단 옷에 옥이 달린 띠. 예복(禮服).

금의옥식[錦衣玉食]  비단옷과 옥같이 흰 쌀밥이란 뜻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런 의식(衣食)을 가리킨다. 호의호식(好衣好食).

금의위[錦衣衛]  명나라 홍무(洪武) 15년(1382)에 설치한 관서로 원래 이름은 금의친군도지휘사사(錦衣親軍都指揮使司)이며, 황궁을 호위하는 친군(親軍)으로서 황제의 출입 때 의장(儀仗)을 맡았다. 이후 권력이 더해지면서 죄인의 체포・구금 등 형옥(刑獄)을 담당했다. 최고장관격인 지휘사(指揮使)를 두어 공신이나 황제의 인척을 임명하였다.

금의위[錦衣衛]  명나라 홍무(洪武) 15년(1382)에 설치한 금의친군도지휘사사(錦衣親軍都指揮使司)를 말한다. 본디 황궁을 지키는 금군 및 황제가 출입할 때의 의장을 관리하는 관서였는데, 나중에 형옥(刑獄)을 아울러 관장하면서 순찰과 체포 등의 권한을 갖게 되었다. <明史 卷89 兵志3>

금의위[錦衣衛]  명나라의 친군(親軍) 상 12위(上十二衛)의 하나로 황제의 시위, 황성과 경도의 수위를 맡은 중앙군의 하나이며, 형옥(刑獄)과 규찰(糾察)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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