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금인구뉴[金印龜紐]~금인명[金人銘]~금인삼함[金人三緘]


금인[金印]  고대의 제왕 또는 고관들이 사용하던 금으로 만든 인새(印璽), 즉 인장(印章)이다. 관직(官職)을 가리키기도 한다. 소철(蘇轍)의 시 관포어(觀捕魚)에 “사람 되어 이런 일 하면 더 없이 편할 것을, 허리에 도장 늘어뜨린 들 무슨 이익이리.[人生此事最便身 金印垂腰定何益]”라고 하였다.

금인[金人]  구리를 부어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것을 가리킨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진시황 26년(221)에 천하의 병기를 거둬 함양에 모아서 종과 12명의 금인을 주조했는데 각각 무게가 1,000 석(石)이었고 궁정 중앙에 두었다.[秦始皇二十六年, 收天下兵, 聚之咸陽, 銷以爲鐘鑄金人十二, 重各千石, 置廷宮中.]”고 하였는데, 장수절(張守節)의 정의(正義)에, 당나라 원교(袁郊)의 삼보구사(三輔舊事)를 인용하여 “천하의 병기를 모아 동인(銅人) 12개를 주조하였는데, 각 무게가 24만 근이었다.”라고 하였다. 1석은 120근으로 1천 석은 12만 근이 된다.

금인[金人]  구리로 주조한 인물상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관주(觀周)에 “공자가 주(周)나라 유적을 관람했는데 마침내 태조(太祖) 후직(后稷)의 사당으로 들어갔다. 당 우측 계단 앞에 금인이 있었다. 그 입을 세 겹으로 봉해놓고 그 등에 새겨 있기를 ‘옛날 말을 신중히 했던 사람이다.’라고 하였다.[孔子觀周 遂入太祖後稷之廟 廟堂右階之前 有金人焉三 緘其口 而銘其背曰古之愼言人也]”라는 기록이 보인다. 전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가리킨다.

금인[金人]  한나라 명제가 금 도금을 한 사람[金人]의 꿈을 꾸고 부의(傅毅)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서역의 귀신은 그 이름을 부처라 하옵는데, 폐하께옵서 꿈꾸신 것은 아마 이것인가 합니다.”라고 하였다.

금인[金人]  신간증보삼략(新刊增補三略)에 “금(金)나라는 본래 녀진(女眞)의 부락(部落)이었는데, 료(遼)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강토(疆土)를 모두 차지하여 국호(國號)를 ‘금(金)’이라 했다.[金本女眞部落 滅遼 竝其地 國號曰金]”고 하였다.

금인구뉴[金印龜紐]  거북 무늬 끈이 달린 금 인장이다. 한(漢) 나라 때 승상(丞相)과 대장군(大將軍) 및 열후(列侯)와 황태자(皇太子)가 금인구뉴를 찼다. <漢舊儀 補遺>

금인명[金人銘]  금인은 주(周)나라의 시조 후직(后稷)의 사당 오른쪽 계단에 두었던 쇠로 만든 사람이다. 공자(孔子)가 주(周)나라에 가서 후직(后稷)의 사당인 태묘(太廟)에 들어갔는데, 사당의 오른쪽 섬돌 앞에 금인(金人)이 있었다. 그 입을 세 번 봉하고 그 등에 “옛날에 말을 조심한 사람이다. 경계할지어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다. 일을 많이 만들지 말라. 일이 많으면 근심이 많다.[古之愼言人也 戒之哉 無多言 多言多敗 無多事 多事多患]”라는 명(銘)이 새겨져 있었다 한다. <孔子家語 觀周 第11>

금인삼함[金人三緘]  공자(孔子)가 후직(后稷)의 사당에 들어가니 금인(金人)이 있는데 그 입을 세 겹으로 봉했으며, 등 뒤에는 “옛날에 말을 조심하던 사람이다.[古之愼言人也]”라고 새겨 있었다고 한다.

금인심검[金人心劒]  진 소왕(秦昭王)이 상사일에 황하의 물굽이에서 술자리를 열었을 때 물속에서 검을 받들고 나온 금인(金人)이 서하(西夏)를 차지할 수 있게 해주겠다 하였다. 이 일이 있은 이후로 진 소왕이 패자가 되었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8 曲水流觴>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