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패[金字牌]~금작경[金鵲鏡]~금작속형[金作贖刑]

금자탑[金子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번역한 말. 그 모양이 금(金)자와 비슷한 데서 온 말. 길이 후세에 전해질만한 가치가 있는 불멸의 업적을 이른다.

금자패[金字牌]  송(宋)나라 심괄(沈括)이 저술한 몽계필담(夢溪筆談) 관정(官政)에 “옛날 역전(驛傳)에 3등급이 있었고, 희령(熙寧) 연간 중엽에 ‘금자패급각체(金字牌急脚遞)’가 있었는데, 고대의 우격(羽檄)과 같은 것이다. 목패(木牌)에다 붉은 칠을 하고 황금색으로 글자를 썼는데, 반짝반짝 빛이나 눈이 현란하였고, 날아가는 번개처럼 지나가면 모두 길을 피하였으므로, 하루에 5백여 리를 갈 수 있다. 속히 처리할 군사의 기무가 있으면 어전(御前)에서 발송하고, 삼성(三省)이나 추밀원(樞密院)에서는 간여하지 못하였다.”라고 하였음.

금자패[金字牌]  악비(岳飛)는 중국 남송 초기의 명장이다. 여러 차례의 무공으로 태위소보(太尉少保)에까지 올라 하남북제로초토사(河南北諸路招討使)가 되어 금군(金軍)을 대파하고 수일 내로 황하를 건너가 실지(失地)를 광복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조정에서 실권을 잡고 있던 진회(秦檜)는 금과의 화의(和議)를 주장하여 하루에 12번 금자패(金字牌)를 내려 악비를 소환했다. 이에 삼군이 통곡하였다. 그 후 진회는 만사설(萬俟卨) 등을 시켜 악비를 탄핵해서 체포 투옥하여 처형하여, 39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宋史 卷365 岳飛列傳>

금작[金雀]  공작 모양의 황금 머리 장식품이다.

금작[金爵]  금으로 만든 새. 여인의 장식품. 금작(金雀). 또는 집 추녀마루 위에다 금으로 장식하여 만들어 덧붙인 새나 봉 따위를 말한다. <文選 班固 西都賦>

금작경[金鵲鏡]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신이경에 이르기를 옛날에 부부가 있었는데 이별을 앞두고 거울을 깨서 각자 반 조각을 갖고 신표로 삼았다. 그 처가 다른 사람과 혼인을 하게 되자 거울이 까치가 되어 남편 있는 곳으로 날아가니 남편이 그것을 알아보았다. 후대의 사람들이 거울을 주조할 때 까치를 그 뒷면에 그려 넣는 일이 이로부터 비롯되었다.[神異經曰昔有夫妻將別破鏡人各執半以爲信. 其妻與人通鏡化爲鵲飛至夫前夫乃知之. 後人因鑄鏡爲鵲安背上自此始也.]”라고 하였다.

금작고릉[金爵觚稜]  금작(金爵)은 금작(金雀)이라고도 하며, 집 추녀마루 위에다 금으로 장식하여 만들어 덧붙인 새나 봉 따위를 말한다. 고릉(觚稜)은 전각(殿閣)의 가장 높고 뾰족한 모서리를 이른다.

금작속형[金作贖刑]  돈으로 형벌을 대속(代贖)하게 함.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황금으로 형벌을 속하게 했다.[金作贖刑]”라고 하였다.

금작제[金作梯]  누각에 오르는 계단을 금으로 만든 것을 이른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