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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패[衿佩]~금패[衿珮]~금패[金貝]~금패[金牌]


금패[衿佩]  금패는 푸른 옷깃과 푸른 패옥(佩玉)을 말한 것으로 푸른 복장(服裝)을 한 청년 학도를 가리킨다. 시경(詩經) 정풍(鄭風) 자금(子衿)에 “푸르디푸른 그대의 옷깃이여, 길이 생각하는 내 마음이로다. 비록 나는 가지 못하나, 그대는 왜 소식을 계속 전하지 않는고. 푸르디푸른 그대의 패옥이여, 길이 생각하는 내 마음이로다. 비록 나는 가지 못하나, 그대는 어이하여 오지 않는고.[靑靑子衿 悠悠我心 縱我不往 子寧不嗣音 靑靑子佩 悠悠我思 縱我不往 子寧不來]”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금패[衿珮]  옷깃과 패옥(佩玉)으로, 공부하는 선비를 가리킨다. 시경(詩經) 정풍(鄭風) 자금(子衿)에 “푸르고 푸른 그대의 옷깃이여, 아득한 나의 그리움이도다.[靑靑子衿 悠悠我心]”라 하였고, 또 “푸르고 푸른 그대의 패옥이여, 아득한 나의 그리움이도다.[靑靑子佩 悠悠我思]”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금패[金貝]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 “금도(金刀)와 거북등딱지와 조개[金刀龜貝]는 물자를 유통시키는 수단이다.”라고 하였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貝(패)는 바다의 갑충(甲蟲)으로서 상형자(象形字)이다. 옛날에 貝를 화폐로 삼고 거북을 보물로 여겼는데, 주대(周代)에 와서 泉(천)이라는 화폐를 사용했으며, 진대(秦代)에 와서는 貝를 없애고 錢(전)을 사용했다.”라고 하였다.

금패[金牌]  나무조각에 금물을 도금하여 만든 패. 규장각(奎章閣)에서 쓰는 부신(符信)으로 규장각을 출입할 때 쓰였다.

금패[金牌]  이금(泥金)으로 글씨를 쓴 나무패인데, 고대에 사면(赦免)이나 군기(軍機)의 긴급한 일이 있을 때에 신표(信標)로 사용하였다.

금패[金牌]  금패(金牌)는 송나라 때 사면령(赦免令)을 내리거나 군사(軍事)에 관한 긴급한 명령을 내릴 적에 가지고 가게 한 신부(信符)이다. 송(宋)나라의 명장 악비(岳飛)가 초토사(招討使)가 되어 금(金)나라 군대를 대파한 뒤 황하를 건너 진격하려고 하였는데,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하던 간신(奸臣) 진회(秦檜)가 “악비는 고군(孤軍)을 거느리고 있으니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면서 황제에게 군사를 철수시키라고 건의하였다. 이에 황제가 하루 사이에 열두 번이나 금자패(金字牌)를 보내어 철수하라고 하자, 악비가 분통스러워서 눈물을 흘리면서 “십 년 동안 노력한 공이 하루아침에 폐해지게 되었다.”라고 하니, 이를 본 군사들이 모두들 통곡하였다. 그 뒤 악비는 그 소환 명령에 따라 군사를 돌렸다가 무고(誣告)에 의해 체포되어 옥사(獄死)하였다. <宋史 卷365 岳飛列傳>

금패[金牌]  송 나라 때 사서(赦書)나 군사(軍事)상의 기밀 등 가장 긴급한 사안을 역말로 전달할 때 사용하는 금자패(金子牌)를 말한다. 송사(宋史) 악비전(岳飛傳)에 “진회(秦檜)가 ‘악비의 외로운 군대를 오래 머물러 둘 수 없다.’고 하면서 회군(回軍)하도록 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악비가 하루에 열두 개의 회군을 명하는 금패를 받고 비분에 차 울며 ‘십 년의 공력이 하루 만에 허사가 되는구나.’라고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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