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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포영아[錦袍嬰兒]~금포적선[錦袍謫仙]~금포화극[金鋪畫戟]


금포서정[錦袍犀鞓]  금포(錦袍)는 비단 도포를 말하고, 서정(犀鞓)은 서각(犀角)으로 장식물을 만들어 붙인 가죽띠를 말하는데, 특히 조선 시대에는 1품 관복 위에 이것을 띠었다.

금포선[錦袍仙]  금포(錦袍)는 황제가 하사한 비단도포이다. 당(唐)나라 이백(李白)이 방달(放達)하여 구속을 싫어하는 성품을 지녀 하지장(賀知章), 이적지(李適之), 여양왕(汝陽王) 진(璡), 최종지(崔宗之), 소진(蘇晉), 장욱(張旭), 초수(焦遂) 등과 주팔선인(酒八仙人)이 되었다. 그리고 사직을 청하여 조정을 떠날 때 천자가 이백에게 금포를 하사하니, 이백이 사방을 주유하였다. 한번은 달빛 아래 금포를 입고 배 안에 앉았는데 그 모습이 방약무인하였다. 그래서 이백을 금포선(錦袍仙)이라 한다. <新唐書 卷201 文藝列傳中 李白>

금포수달[金鋪繡闥]  금포(金鋪)와 수달(繡闥)은 모두 화려하게 단청(丹靑)한 문호(門戶)를 가리킨다.

금포영아[錦袍嬰兒]  죽순(竹筍)을 말한 것인데 죽순을 싼 껍질이 얼룩얼룩하므로 죽순을 비단 포대기에 쌓인 어린애에 비유한 것이다. 육귀몽(陸龜蒙)의 시 신죽(新竹)에 “어린 용이 나오는 걸 가만히 보면서 다시금 금포가 영락함을 읊노라.[徐觀稚龍出 更賦錦苞零]”라고 하였다. <佩文韻府>

금포원지[金布園地]  인도(印度)의 수달장자(須達長者)가 일찍이 세존(世尊)의 공덕(功德)을 듣고는 그를 매우 존경한 나머지, 정사(精舍)를 건립하여 세존을 그곳에 내림(來臨)하게 하려고 하였다. 당시 기다태자(祇多太子)에게 마침 큰 원지(園地)가 있었는데, 수달장자가 기다태자에게 그 원지를 사겠다고 청하자, 태자가 농담으로 황금을 그 원지에 가득 깔면 팔겠다고 하였다. 이에 장자가 즉시 자기가 가진 황금을 몽땅 털어서 그 원지에 가득 깔아 덮으므로, 태자가 크게 감동하여 즉시 그 원지에 정사를 지어서 세존으로 하여금 그곳에 거주하게 하였다. 기다태자의 원지에 정사를 지었다 하여 후세에 이를 기원정사(祇園精舍)라 칭하기도 한다. <佛國記불국기>

금포적선[錦袍謫仙]  이백(李白)을 가리킨다. 신당서(新唐書) 이백전(李白傳)에 “이백이 산림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을 알고 황제가 금과 비단을 내리고 돌아가게 하였다. 이백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최종지와 함께 배를 타고 채석기(采石矶)를 출발한 뒤 금릉에 이르러 황제가 내려준 비단 도포를 입고 배 안에 않아 있는데 마치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였다.[懇求還山, 帝賜金放還. 白浮游四方, 嘗乘舟與崔宗之自采石至金陵, 著宮錦袍坐舟中, 旁若無人.]”라고 하였다. 謫(적)은 降(강)의 의미이니 적선(謫仙)은 인간(人間)으로 내려온 신선이다. 하지장(賀知章)이 일찍이 장안(長安)의 자극궁(紫極宮)에서 이백을 보고 적선인(謫仙人)이라 하였다. 이백의 시 대주억하감(對酒憶賀監)에 “장안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나를 귀양 온 신선이라 불렀네.[長安一相見 呼我謫仙人]”라고 하였다.

금포화극[金鋪畫戟]  귀족과 고관의 저택을 가리킨다. 금포는 황금 문고리이고, 화극은 당나라 때 3품 이상 고위 관원의 저택 문 앞에 세워 두었던 채색(彩色)한 목창(木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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