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거무시[起居無時]~기거이좌[箕踞而坐]~기거좌립[起居坐立]

기거만복[起居萬福]  서간(書簡) 용어(用語)로 상대방의 신상(身上)이 한결같이 변함없이 많은 복을 받으라는 말이다. 편지글에서, 상대편이 무사하기를 빈다는 뜻으로 쓰는 상투적인 말로 주로 윗사람에게 쓰는 표현이다.

기거무시[起居無時]  은사(隱士)의 자유로운 몸. 먹고 자는 때가 일정하지 아니하다는 뜻으로, 자기 마음대로 일어나고 자고 하는 속박(束縛) 없는 자유스러운 생활을 이르는 말이다. 한유(韓愈)의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 반곡으로 돌아가는 이원을 보내며 쓰다)에 “산에서 나물을 캐면 맛이 좋아 먹을 만하고, 물가에서 낚시질하면 신선하여 먹을 만하오. 행동하는데 있어서 정해진 일과가 없으니 오직 편한대로 따를 뿐이오.[採於山, 美可茹; 釣於水, 鮮可食, 起居無時, 惟適之安.]”라고 한 데서 보인다.

기거사인[起居舍人]  중서성(中書省)에 속하는 관직으로 황제의 언행(言行)을 기록하는 일을 맡았다. 천자(天子)의 좌우(左右)에서 천자(天子)의 언행(言行)과 정사(政事)에 관한 신하의 의견(意見) 등을 일일이 기록(記錄)하는 벼슬로 중서성(中書省)에 속하고 2인(二人)이다. 주대(周代)의 좌사(左史), 우사(右史)와 같다.

기거이좌[箕踞而坐]  기(箕)는 곡식을 까부는 기구인 키를 이르는데 두 다리를 뻗고 앉으면 그 모양이 마치 키와 같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거(踞)는 걸터앉는 것으로, 옛날 두 다리를 뻗고 앉거나 걸터앉는 것은 불공(不恭)한 모습으로 간주하여 크게 경계하였다. 장자(莊子) 지락(至樂)에 “장자의 아내가 세상을 뜨자 혜자가 문상을 갔는데 장자는 그때 두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항아리 모양의 악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莊子妻死, 惠子弔之, 莊子則方箕踞鼓盆而歌.]”라고 보인다.

기거일[起居日]  군신(群臣)들이 재상을 따라 5일 마다 황제를 알현하는 제도로 후당(後唐) 명종(明宗) 때부터 시작되어 송대(宋代)까지 이어졌다. 신오대사(新五代史) 이기전(李琪傳)에 “명종(明宗)이 막 즉위했을 때 하명하여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5일마다 한 번씩 재상을 따라 내전(內殿)으로 들어와 알현하도록 하였는데, 이를 기거(起居)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기거좌립[起居坐立]  일상생활을 하면서 앉거나 설 때에도 자세를 단정히 해야 하며, 출입을 하면서 느리게 걷거나 빨리 걸을 때에도 발걸음을 듬직하고 무게 있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주희(朱熹)가 위원리(魏元履)의 아들인 위응중(魏應仲)에게 보낸 서한에 “일상생활을 하면서 앉거나 서거나 할 때에도 자세를 단정히 해야 할 것이니, 몸을 한쪽에 기대거나 치우치게 함으로써 게을러지는 걱정이 있게 해서는 안 될 것이요, 출입을 하면서 느리게 걷거나 빨리 걸을 때에도 발걸음을 듬직하고 무게 있게 해야 할 것이니, 방정맞고 경박하게 함으로써 덕성을 해치는 일이 있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起居坐立 務要端莊 不可傾倚恐至昏怠 出入步趨 務要凝重 不可剽輕以害德性]”라고 하였다. 회암집(悔庵集) 권39 여위응중(與魏應仲)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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