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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夕行금석행 / 섣달 그믐날 밤에 / 杜甫두보

今夕何夕歲云徂[금석하석세운조]   이 밤이 어떤 밤인가. 한해가 가노라네

更長燭明不可孤[경장촉명불가고]   밤 길고 불 밝은데 외로이 보낼 수 있나

咸陽客舍一事無[함양객사일사무]   함양의 객사에는 할 일 없으니

相與博塞爲歡娛[상여박색위환오]   박색놀이 함께하며 즐거움 삼네

憑陵大叫呼五白[빙릉대규호오백]   기세등등하게 오백이야 외치건만

袒跣不肯成梟盧[단선불긍성효로]   웃통 벗고 발 벗어도 나오지 않네

英雄有時亦如此[영웅유시역여차]   영웅도 때로는 이와 같거니

邂逅豈卽非良圖[해후기즉비량도]   우리의 오늘 만남 어찌 잘한 일 아니랴

君莫笑ㅡㅡㅡㅡ[군막소]ㅡㅡㅡㅡ   그대여, 비웃지 마시라.

劉毅從來布衣願[유의종래포의원]   유의가 품었던 포의시절 바램을

家無儋石輸百萬[가무담석수백만]   집에 곡식 한 섬 없이 백만 전을 걸었다네

<今夕行금석행 / 섣달 그믐날 저녁에 / 杜甫두보 : 杜少陵集두소릉집>


  • 두보[杜甫]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 두릉야로(杜陵野老), 두릉포의(杜陵布衣) 등이 있다. 양양(襄陽) 지방 출신으로 과거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40대인 천보(天寶) 14년(755년)에야 비로소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안녹산(安祿山)의 난 당시 장안에서 반군에게 잡혔다가 탈출, 숙종(肅宗)의 진영에 합류하여 좌습유(左拾遺)와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지낸 적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두습유(杜拾遺), 두공부(杜工部) 등으로 불렀고, 또 장안성 밖 소릉(少陵)의 초당(草堂)에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두소릉(杜少陵), 두초당(杜草堂)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는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함께 이두(李杜)로 불렸는데, 두목(杜牧)과 이상은(李商隱)의 합칭인 소이두(小李杜)와 구별하기 위해 대이두(大李杜)라고도 부른다. 문학을 발판 삼아 벼슬로 나아가려던 그의 꿈이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짧은 한때를 빼고는 평생을 가난과 병으로 고생을 겪어야 했다. 중국의 서북 지역을 유랑하다가 결국 병사했다. 벼슬살이와 달리 문학, 특히 시에서 이룬 성취가 대단하였다. 남긴 시가 1500여 수에 달하며 작품집으로 두공부집(杜工部集)이 있다. 후세 사람들에게 그 자신은 시성(詩聖)으로, 또 그의 시는 시사(詩史)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 경장[更長]  1경은(更) 보통 2시간으로 옛날 밤을 다섯으로 나누어 5경까지 있었다.
  • 박새[博塞]  놀음의 한 가지로 쌍륙(雙六)과 비슷한 놀이이다.
  • 빙릉[憑陵]  빙릉(憑陵)은 의기양양(意氣揚揚)한 모습이다.
  • 오백[五白]  오백은 도박(賭博) 놀음패의 하나로 오목(五木)의 제도인데, 위는 검고 아래는 희게 만든 주사위를 던져서 다섯 개가 모두 검은 쪽이 나오는 것을 노(盧)라 하여 가장 좋은 패로 보고, 그 다음은 모두 흰 쪽이 나오는 패인데 이를 오백(五白)이라고 한다. 오백(五白)을 외친다는 것은 주사위를 던지면서 좋은 패가 나오라고 외치는 것이다.
  • 오백[五白]  오백은 쌍륙(雙六)을 놀 때 한쪽은 흰색, 다른 한쪽은 까만색으로 된 5개의 나무패가 모두 흰색이 나오는 것으로, 모두 까만색이 나오는 노(盧) 다음으로 좋은 것이다.
  • 효로[梟盧]  효로는 옛날 저포(樗蒲)놀이에서 제일 높은 점수를 효(梟)라 하고, 그 다음을 로(盧)라 하였다. 이덕홍(李德弘)의 간재집(艮齋集) 속집(續集) 4권에 “골패 다섯 개가 모두 흰 색이면 이기므로 던지는 자들이 오백(五白)을 외치면서 이 패가 나오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효(梟)와 로(盧)는 반드시 오백(五白)의 하나일 터인데 효(梟)가 더 우세한 패이다.” 하였다. 김융(金隆)의 물암집(勿巖集)에도 같은 내용이 보인다.
  • 유의[劉毅]  동진(東晉)의 패(沛) 땅 사람으로 젊어서부터 큰 뜻을 품었는데 환현(桓玄)이 찬위(簒位)하자 유유(劉裕)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토평(討平)하고 그 공로로 남평군개국공(南平郡開國公)에 봉해졌으나 유유(劉裕)와 불화(不和)하여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평소 노름을 좋아하여 집에 곡식 한 섬의 비축이 없어도 저포(樗蒲) 놀이에는 한 번에 백만 금을 걸기도 하였다고 한다. 남사(南史)에 “유의는 집에 몇 석의 저축이 없었으나 저포 노름 한 판에 백만 전을 걸었다.[劉毅家無儋石之儲, 樗蒲一擲百萬.]”고 하였다. <南史 卷1 宋本紀上>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43 藝術部 博塞 今夕行, 一擲百萬>
  • 포의[布衣]  베옷. 벼슬하지 않은 사람이 입는 옷. 전하여 벼슬하지 않은 사람. 무위무관(無位無官)의 사람. 백의(白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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