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록[己卯錄]~기묘명현[己卯名賢]~기묘피장[己卯皮匠]

기묘록[己卯錄]  안방준(安邦俊)이 1642년 70세에 저술한 3권 2책의 기묘유적(己卯遺蹟)을 말한다. 이것은 1519년(중종14)에 일어난 기묘사화에 관한 사실을 모아서 편찬한 책이다. 1권에는 조광조가 조정에 들어간 뒤 4~5년의 행적과 경연에서 왕에게 한 이야기 등을 수록했다. 2권에는 남곤(南袞)・심정(沈貞) 등이 조광조 일파가 역적모의를 한다고 거짓으로 꾸며서 왕에게 보고한 사실, 이신(李信)의 밀고로 억울하게 화를 입은 사람들과 관련된 일, 그리고 송사련(宋祀連)의 밀고로 일어난 일을 수록했다. 3권에는 남곤의 죽음과 김안로(金安老)의 탄핵으로 심정 등이 처형당한 사실을 실었다. 부록으로 이황(李滉)이 지은 조광조의 행장(行狀), 노수신(盧守愼)이 지은 신도비문(神道碑文), 이이(李珥)가 지은 묘지명과 사원기(祠院記)가 실려 있다.

기묘명현[己卯名賢]  조선 중종(中宗) 14년 기묘사화 때 화(禍)를 입은 사림들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다. 이들 기묘사림들에 대해서는 김정국(金正國)이 편찬한 기묘당적(己卯黨籍)에 94명이 수록되어 있고, 또 김정(金淨)의 후손 김육(金堉)이 편찬한 기묘제현전(己卯諸賢傳)에는 218명이 수록되어 있다. 대체로 중종 대의 개혁정치를 주도한 조광조・김정국・김안국(金安國) 등 주로 김굉필(金宏弼)의 문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사화에서 가장 혹심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1518년(중종13) 현량과(賢良科)를 통해 등용되었던 김식(金湜), 안처근(安處謹), 박훈(朴薰), 김정(金淨), 박상(朴祥), 김구(金絿), 기준(奇遵), 한충(韓忠) 등과 조광조 등 주로 30대의 소장파였다.

기묘선류[己卯善類]  조선 중종(中宗) 14년에 있었던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화를 입은 명현(名賢)을 말한다. 조광조(趙光祖)를 위시한 김정(金淨) 등 유교로써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이른바 삼대(三代)의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하려던 신진 사류(新進士類)인데, 훈구파(勳舊派)인 남곤(南袞)・홍경주(洪景舟) 등의 모함으로 사사(賜死) 또는 유배당하였다. <燃藜室記述 己卯名賢>

기묘피장[己卯皮匠]  기묘년(己卯年 1519, 중종14)에 피장(皮匠 가죽을 다루는 사람) 노릇을 하는 어떤 은군자(隱君子)가 있었는데, 조광조(趙光祖)는 그가 어진 사람임을 알고 그에게 찾아가서 학문을 묻고 혹은 그와 함께 자기도 했다. 한 번은 그 사람이 조광조에게 “공(公)의 재주는 일세(一世)를 충분히 다스릴 수 있으나 옳은 임금을 만나야만 할 수 있을 것인데, 지금 임금은 비록 이름만을 취하여 공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실은 공이 어떤 인물인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이오. 그러기에 만일 소인(小人)이 이간을 붙이면 공은 화(禍)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오.”라고 하였다. <己卯錄>

기묘현량과[己卯賢良科]  조선 중종(中宗) 때 조광조(趙光祖) 등의 제안으로 실시된 관리 채용 제도로서, 경학(經學)에 밝고 덕이 높은 사람을 천거하게 하여 대책(對策)으로 시험을 보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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