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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무건[其永無愆]~기영삭허[氣盈朔虛]~기영오만[忌盈惡滿]


기영낙사[耆英洛社]  송(宋)나라 문언박(文彦博)이 서도 유수(西都留守)로 있을 때, 부필(富弼)의 집에서 연로하고 어진 사대부들을 모아 놓고 술자리를 베풀어 서로 즐겼던 모임을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 또는 낙사기영회(洛社耆英會)라 하였던 데서 온 명칭이다.

기영무건[其永無愆]  부열(傅說)이 은 고종(殷高宗)에게 진언(進言)하면서 “선왕이 이루어 놓은 법도를 잘 살펴서, 길이 허물이 없도록 하시라.[監于先王成憲 其永無愆]”라고 한 말이 서경(書經) 열명 하(說命下)에 나온다.

기영사[耆英社]  기영회(耆英會)를 말한다. 기영회는 송나라 문언박(文彦博)이 서경 유수(西京留守)로 있을 때, 당나라의 백거이(白居易)가 결성한 구로회(九老會)를 모방하여 부필(富弼)・사마광(司馬光) 등 13인의 원로대신을 모아 만든 모임인 기영회(耆英會)로, 관직은 무시한 채 나이로만 서열을 매긴 뒤 술과 시로 서로 즐겼는데, 그 뒤에 조정 원로들의 모임을 흔히 기영회라고 칭하게 되었다. <宋史 卷313 文彦博列傳>

기영삭허[氣盈朔虛]  해가 하늘과 만날 적에는 5일과 940분의 235일이 더 많은데, 이것을 기영(氣盈)이라고 하고, 달이 해와 만날 적에는 5일과 940분의 592일이 적은데, 이것을 삭허(朔虛)라고 한다. 이 기영과 삭허를 합쳐서 윤달을 만든다.

기영세이[箕潁洗耳]  요(堯) 임금 때 고사(高士)인 허유(許由)와 소부(巢父)가 기산(箕山) 아래 영수(潁水) 가에 살았는데 요 임금이 허유에게 천하를 물려주려 하자 허유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 하여 영수에서 귀를 씻었고, 소부는 소에게 영수의 냇물을 먹이려 하다가 허유가 귀를 씻었다는 말을 듣고는 물이 더러워졌다 하여 소를 상류로 끌고 가서 물을 먹였다 한다. <高士傳>

기영세이도[箕潁洗耳圖]  요(堯) 임금 때 소보(巢父)와 허유(許由)가 기산(箕山)에 숨어살았는데, 요 임금이 천하를 물려주려 하자 귀를 더럽혔다 하여 영수(潁水)에 귀를 씻었다고 하는 고사가 있는데, 이 고사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기영오만[忌盈惡滿]  차는 것을 꺼리고 넘치는 것을 싫어함. 주역(周易) 겸괘(謙卦)의 단사(彖辭)에 “하늘의 도리는 가득 찬 것을 덜어내어[虧盈] 겸손한 것에 보태고, 땅의 도리는 가득 찬 것을 바꾸어[變盈] 겸손한 데로 흐르게 하며,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쳐[害盈] 겸손한 것에 복을 주고, 사람의 도리는 가득 찬 이를 싫어하고[惡盈]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고 하였는데, 상서(尙書) 대우모(大禹謨)에 “가득 참은 덞을 부른다.[滿招損]”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기영작회[耆英作會]  송(宋) 나라 때 문언박(文彦博)이 서경유수(西京留守)로 있으면서 당(唐) 나라 백거이(白居易)의 구로회(九老會)를 모방하여, 당시에 학덕이 높은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등 13인의 원로들과 함께 모여서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만들었던 데서 온 말이다.

기영지민[箕潁之民]  기산(箕山)과 영수(穎水)의 백성. 요(堯) 임금 때의 은사(隱士)인 허유(許由)와 소부(巢父)가 기산과 영수 가에 살았으므로 이들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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