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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가포[其人價布]~기인감식[飢人甘食]~기인공물[其人貢物]


기인가포[其人價布]  기인(其人)들이 직접 신역(身役)을 바치지 않는 대신 내던 가포(價布)를 말한다. 기인은 조선 시대 서울 각 관아에서 쓰는 탄목(炭木)을 주선하여 바치던 사람들로, 각 관아에서 쓰는 탄목은 원래 각 도(道)에 기인을 두고 그들로 하여금 이를 마련케 한 다음 해마다 윤차(輪次)로 각 읍(邑)의 향리(鄕吏)가 서울로 운반, 공조(工曹)를 통하여 각사(各司)로 분정(分定)해서 쓰도록 하였다. 그러나 대동법(大同法)이 실시된 뒤부터는 이 법을 없애고, 서울 사람으로 하여금 그 값을 미리 받아 가지고 탄목을 구입해서 바치게 하였는데, 이때 이 일을 맡은 사람들을 기인이라 하였다. 가포(價布)는 일정한 신역(身役)을 치러야 할 사람이 신역을 치르지 않는 대신에 바치는 베를 말한다.

기인가포[其人價布]  기인(其人)이 역(役)의 대가로 바치는 포(布)이다. 기인(其人)이란 고려 때 지방 향리(鄕吏)의 자제로서 서울에 뽑혀 올라와 일정한 역(役)을 지는 동시에 자기 지방 일에 대한 자문이 되던 사람을 가리킨다. 조선조 태종(太宗) 이후에는 각 도에 기인을 더 두어 궁중과 서울의 각 관사의 땔나무 따위를 바치는 역을 지게 되었다가 광해군 때 대동법(大同法)이 설치된 뒤로부터 땔나무와 숯을 궁방・관아에 납입(納入)하는 공인(貢人)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大典會通 工典 京役吏>

기인간사[棄人間事]  사기(史記) 권55 유후세가(留侯世家)에 한(漢)나라의 개국공신 장량(張良)이 유후(留侯)의 봉작(封爵)을 받고 나서 “지금 세 치의 혀를 가지고 임금의 스승이 되었는가 하면, 만호에 봉해지고 열후의 지위에 올랐으니, 이는 포의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영광으로서 나에게는 이미 충분하다고 하겠다. 바라건대 인간 세상의 일을 버리고 신선인 적송자를 따라 노닐고 싶다.[今以三寸舌 爲帝者師 封萬戶 位列侯 此布衣之極 於良足矣 願棄人間事 欲從赤松子遊耳]”고 말하고는 벽곡(辟穀)과 도인(導引)의 술법을 행한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기인감식[飢人甘食]  배고픈 사람은 음식을 달게 먹는다는 뜻으로,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 것 같이 궁한 사람은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맹자(孟子) 진심장구 상(盡心章句 上)에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굶주린 사람은 밥을 달게 먹고, 목마른 사람은 물을 달게 마사니, 이는 음식의 바른 맛을 깨닫지 못함이라. 굶주림과 목마름이 해친 것이니, 어찌 오직 입과 배에만 굶주림과 목마름의 해침이 있으리오. 사람의 마음이 또한 다 해침이 있느니라. 사람이 능히 기갈의 해로움으로써 마음의 해로움을 받지 않는다면 남에게 미치지 못함을 걱정할 것이 없을 것이다.[饑者甘食, 渴者甘飲, 是未得飲食之正也, 飲渴害之也. 豈惟口腹有饑渴之害? 人心亦皆有害. 人能無以饑渴之害為心害, 則不及人不為憂矣.]”라고 하였다.

기인공물[其人貢物]  궁중에서 쓰는 땔나무와 숯 등을 기인(其人)으로 하여금 공물로 바치게 하는 일. 기인(其人)이란, 고려 때에 지방 향리(鄕吏)의 자제로서 서울에 뽑혀 올라와 일정한 역(役)을 지는 동시에 자기 지방에 대한 자문이 되던 것을 가리킨다. 조선조 태종(太宗) 이후에는 각 도에 기인(其人)을 더 두어 궁중과 서울의 각 관사의 땔나무 따위를 바치는 역을 지게 되었다가 광해군 때 대동법(大同法)이 설치된 뒤로 땔나무와 숯을 중앙에 납입(納入)하는 중간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를 기인공(其人貢)이라고 하고 그 단체를 기인계(其人契)라 하였다. <大典會通 工典 京役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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