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張氏隱居二首[其一]제장씨은거2수1 / 장씨의 은거에서 쓰다 / 杜甫두보

春山無伴獨相求[춘산무반독상구]   봄 산을 동반 없이 홀로 그대 찾아가니

伐木丁丁山更幽[벌목정정산갱유]   나무 찍는 소리 쩡쩡 산 더욱 그윽하네

澗道餘寒歷冰雪[간도여한력빙설]   계곡 길엔 남은 추위 얼음 눈을 지나서

石門斜日到林丘[석문사일도림구]   석문에 해 비낄 즘 숲 구릉에 이르렀네

不貪夜識金銀氣[불탐야식금은기]   탐심 없어 밤중에는 금은기운 분별하고

遠害朝看麋鹿遊[원해조간미록유]   해칠 마음 머니 아침에 사슴 와서 노네

乘興杳然迷出處[승흥묘연미출처]   흥을 타고 묘연하니 처세의 방도 잊으니

對君疑是泛虛舟[대군의시범허주]   그대 바로 범연한 장자의 빈 배 아니런가

<題張氏隱居二首[其一]제장씨은거21 / 장씨의 은거지에 제하다 / 杜甫두보>


  • 두보[杜甫]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 두릉야로(杜陵野老), 두릉포의(杜陵布衣) 등이 있다. 양양(襄陽) 지방 출신으로 과거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40대인 천보(天寶) 14년(755년)에야 비로소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안녹산(安祿山)의 난 당시 장안에서 반군에게 잡혔다가 탈출, 숙종(肅宗)의 진영에 합류하여 좌습유(左拾遺)와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지낸 적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두습유(杜拾遺), 두공부(杜工部) 등으로 불렀고, 또 장안성 밖 소릉(少陵)의 초당(草堂)에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두소릉(杜少陵), 두초당(杜草堂)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는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함께 이두(李杜)로 불렸는데, 두목(杜牧)과 이상은(李商隱)의 합칭인 소이두(小李杜)와 구별하기 위해 대이두(大李杜)라고도 부른다. 문학을 발판 삼아 벼슬로 나아가려던 그의 꿈이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짧은 한때를 빼고는 평생을 가난과 병으로 고생을 겪어야 했다. 중국의 서북 지역을 유랑하다가 결국 병사했다. 벼슬살이와 달리 문학, 특히 시에서 이룬 성취가 대단하였다. 남긴 시가 1500여 수에 달하며 작품집으로 두공부집(杜工部集)이 있다. 후세 사람들에게 그 자신은 시성(詩聖)으로, 또 그의 시는 시사(詩史)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 장씨[張氏]  이백(李白), 공소보(孔巢父), 배정(裵政), 한준(韓準), 도면(陶沔) 등과 더불어 죽계육일(竹溪六逸)이라 불렸던 장숙명(張叔明)일 것이라고도 하고, 연주(兗州) 사람 장개(張玠)일 것이라고도 한다. 장개(張玠)의 아들이 장건봉(張建封)인데 두보와 장개가 교분을 나눌 때 장건봉은 6·7세의 어린아이였다. 만년에 두보가 담주(潭州)서 장건봉을 만났는데, 호남(湖南) 관찰사(觀察使) 위지진(韋之晋)의 막중에서 좌청도병조참군(左淸道兵曹參軍)을 맡고 있었다. 그가 직(職)을 버리고 떠나 갈 때에 두보가 별장십삼건봉(別張十三建封) 시(詩)를 지어 주었다.
  • 상구[相求]  서로 무엇을 찾거나 청함. 바라다. 요구하다. 부탁하다.
  • 정정[丁丁]  도끼로 나무를 찍을 때 나는 쩌렁쩌렁하는 울리는 소리. 시경(詩經) 소아(小雅) 벌목(伐木)에 “나무 베는 소리 쩡쩡 울리거늘 새 우는 소리 꾀꼴꾀꼴 들리도다.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겨 가도다. 꾀꼴꾀꼴 꾀꼬리 울음이여, 벗을 찾는 소리로다. 저 새를 보건대 오히려 벗을 찾아 우는데, 하물며 사람이 벗을 찾지 않는단 말인가.[伐木丁丁 鳥鳴嚶嚶 出自幽谷 遷于喬木 嚶其鳴矣 求其友聲 相彼鳥矣 猶求友聲 矧伊人矣 不求友生]”라고 하였다.
  • 산경유[山更幽]  양대(梁代)의 문사(文士)인 왕적(王籍)의 시(詩) 입약야계(入若耶溪)에 “매미가 우니 숲은 더욱 고요해지고, 새가 지저귀니 산은 한층 그윽해진다.[蟬噪林逾靜 鳥鳴山更幽]”라고 하였는데, 강남(江南)에서는 더 이상 좋은 표현은 없다고 하는 데에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양(梁) 간문제(簡文帝)는 읊어보더니 잊지를 못하였고, 효원제(孝元帝)는 음미해보더니 이런 시는 다시 얻을 수 없다 하며, 회구지(懷舊志) 왕적전(王籍傳)에 수록하게 하였다.
  • 간도[澗道]  산골짜기 시냇길.
  • 석문[石門]  산 이름이다.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 동북(東北) 오십리(五十里)에 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마주보고 선 바위가 마치 문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백(李白)의 시에 ‘노군 동쪽 석문에서 두보를 보내며[魯郡石門重別杜甫노군석문중별두보]’가 있다.
  • 석문[石門]  산 이름이다. 일통지(一統志)에 “온주성 북쪽에 석문산이 있다.[石門山在溫州府城北]”라고 하였다.
  • 석문[石門]  석문(石門)은 전당강(錢塘江) 상류에 있는 지역이다. 소식(蘇軾)은 이곳으로부터 항주(杭州)까지 운하를 건설할 것을 계획하고 이 운하를 석문하(石門河)라고 지칭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채납되지 않아 석문하(石門河)는 이뤄지지 않았다.
  • 석문[石門]  중국의 지명. 이백(李白)이 젊어서 은거하던 곳으로, 은자가 사는 곳을 뜻한다. 이백(李白)의 하도귀석문구거(下途歸石門舊居) 시에 “석문의 흐르는 물가에 복사꽃이 만발했어라, 내 또한 피란 나온 진나라 사람의 집에 갔었지.[石門流水徧桃花 我亦曾到秦人家]”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21>
  • 임구[林丘]  숲에 있는 구릉. 은거지(隱居地).
  • 금은기[金銀氣]  패군(敗軍)과 망국(亡國)의 유허지(遺墟地)에 보물(寶物)이 쌓여 있어 그 위에 기운(氣運)이 있다 한다. 사기(史記) 권27 천관서(天官書)에 “홍수가 진 곳, 군대가 패전한 전쟁터, 망국의 폐허, 지하에 묻힌 금전과 보물 등의 위에는 모두 기운이 서려 있으니 잘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다.[大水處, 敗軍場, 破國之虛, 下有積錢, 金寶之上, 皆有氣, 不可不察.]”라고 하였다.
  • 미록[麋鹿]  고라니와 사슴. 큰 사슴과 사슴. 자신을 야인(野人)으로 자처하는 겸사로 쓰는 말. 맹교(孟郊)의 시 은사(隱士)에 “호랑이와 표범은 길 위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고, 사슴들은 제 몸을 숨길 줄 안다.[虎豹忌當道 糜鹿知藏身]”라고 하였다.
  • 미록유[麋鹿游]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정사를 돌보지 않고 날마다 서시(西施)와 함께 황음(荒淫)을 일삼자, 오자서(伍子胥)가 간언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오자서가 오나라의 멸망을 예언하며 “신이 이제 곧 고소대 아래에 사슴과 고라니가 노는 광경을 보게 될 것입니다.[臣今見麋鹿游姑蘇之臺也]”라고 말하였던 고사가 있다. <吳越春秋 卷5 夫差內傳>
  • 승흥[乘興]  흥을 타다. 흥이 일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왕자유(王子猷 : 왕휘지王徽之)는 산음(山陰)에 살았는데 밤에 큰 눈이 내리자 자다 일어나 문을 열고 술을 내오라 한 뒤 사방을 보니 고요하였다. 일어나 서성이면서 좌사의 초은시(招隱詩)를 읊었다. 문득 친구 대안도(戴安道 : 대규戴逵) 생각이 났다. 이때 안도는 섬계(剡溪)에 살았는데 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즉시 작은 배를 띄우고 그곳으로 갔다. 아침이 되어서야 이르렀는데 안도의 집으로 가지 않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연유를 물으니 자유가 말했다. 나는 본래 흥이 일어나 간 것이고 흥이 다해서 돌아온 것이다. 반드시 안도를 봐야 할 일이 무엇인가.[王子猷居山陰, 夜大雪, 眠覺, 開室命酌酒, 四望皎然. 因起彷徨, 詠左思招隱詩. 忽憶戴安道. 時戴在剡, 卽便夜乘小舟就之. 經宿方至, 造門不前而返, 人問其故, 王曰: 吾本乘興而行, 興盡而返, 何必見戴]”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나온다.
  • 묘연[杳然]  그윽하고 멀어서 눈에 아물아물함. 오래 되어 기억이 흐릿함. 소식이 없어 행방을 알 수 없음. 요원하다. 아득하다. 묘연하다. 잠잠하다. 전혀 없다. 감감하다. 고요하다. 적막하다. 매우 조용하다.
  • 출처[出處]  사람이 다니거나 가는 곳. 사물이나 말 따위가 생기거나 나온 근거. 세상에 나서는 일과 집에 들어 있는 일. 또는 그곳. 출사(出仕)와 은퇴(隱退). 나아감과 물러남.
  • 출처[出處]  출(出)은 세상에 나가 벼슬하는 것이고, 처(處)는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사는 것을 말한다. 행장(行藏)과 같은 말이다.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쓰이면 도를 행하고 버려지면 은둔한다.[用之則行 舍之則藏]”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행(行)은 세상에 나와 도를 행하는 것이며, 장(藏)은 초야에 은둔하는 것이다.
  • 의시[疑是]  ~인 것 같다. ~로 의심하다. ~인 듯하다.
  • 허주[虛舟]  사람이 타지 않고 떠다니는 빈 배. 허심(虛心)한 경지. 계교(計巧)를 부리지 않고 텅 빈 마음으로 외물(外物)을 대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장자(莊子) 제20편 산목(山木)에 “배를 나란히 하고 황하를 건널 때 만약 빈 배가 와서 자기 배에 부딪힌다면 비록 마음이 좁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성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그 배에 타고 있다면 소리쳐 배를 다른 곳으로 저어가라고 할 것입니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칠 것이고, 그래도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치면서 반드시 나쁜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는 성내지 않다가 지금은 성내고 소리치는 것은 앞의 배는 빈 배였는데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텅 비우고 세상을 노닌다면 그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方舟而濟於河, 有虛船來觸舟, 雖有惼心之人不怒. 有一人在其上, 則呼張歙之. 一呼而不聞, 再呼而不聞, 於是三呼邪, 則必以惡聲隨之. 向也不怒而今也怒, 向也虛而今也實. 人能虛己以遊世, 其孰能害之.]”
  • 불계지주[不繫之舟]  범연(泛然)한 경지를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열어구(列禦寇)에 “기교가 많은 자는 수고로울 것이며, 아는 것이 많은 자는 걱정이 많은 법이다. 능력이 없는 자는 오히려 추구하는 것이 없을 것이니, 배불리 먹고 유유히 노닐다가 매어있지 않은 배처럼 두둥실 떠다니고 마음을 텅 비워 무심히 소요하게 될 것이다.[巧者勞而知者憂, 无能者无所求, 飽食而敖遊, 汎若不繫之舟, 虛而敖遊者也.]”라고 하였고, 그 소(疏)에 “성인은 범연하니 매임이 없으니, 비유하자면 저 빈 배와 같아 자연의 흐름에 맡겨 자유로이 노닌다.[聖人汎然無係, 譬彼虛舟, 任運逍遙.]”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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