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題張氏隱居二首[其二]제장씨은거2수2 / 장씨의 은거에서 적다 / 杜甫두보


之子時相見[지자시상견]   이 사람은 서로 만날 때마다

邀人晚興留[요인만흥류]   사람을 늦도록 흥에 머물게 하네

霽潭鱣發發[제담전발발]   비 개인 못에는 잉어가 펄떡이고

春草鹿呦呦[춘초록유유]   봄 풀 뜯는 사슴은 우우 우누나

杜酒偏勞勸[두주편로권]   권하기만 하면 두강의 술이요

張梨不外求[장리불외구]   장공의 배는 따로 구할 것이 없네

前村山路險[전촌산로험]   앞 마을 산길은 험준하지만

歸醉每無愁[귀취매무수]   취해서 돌아가니 매번 걱정이 없네

<題張氏隱居二首[其二]제장씨은거22 / 장씨의 은거지에서 제하다 / 杜甫두보>


  • 두보[杜甫]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 두릉야로(杜陵野老), 두릉포의(杜陵布衣) 등이 있다. 양양(襄陽) 지방 출신으로 과거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40대인 천보(天寶) 14년(755년)에야 비로소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안녹산(安祿山)의 난 당시 장안에서 반군에게 잡혔다가 탈출, 숙종(肅宗)의 진영에 합류하여 좌습유(左拾遺)와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지낸 적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두습유(杜拾遺), 두공부(杜工部) 등으로 불렀고, 또 장안성 밖 소릉(少陵)의 초당(草堂)에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두소릉(杜少陵), 두초당(杜草堂)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는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함께 이두(李杜)로 불렸는데, 두목(杜牧)과 이상은(李商隱)의 합칭인 소이두(小李杜)와 구별하기 위해 대이두(大李杜)라고도 부른다. 문학을 발판 삼아 벼슬로 나아가려던 그의 꿈이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짧은 한때를 빼고는 평생을 가난과 병으로 고생을 겪어야 했다. 중국의 서북 지역을 유랑하다가 결국 병사했다. 벼슬살이와 달리 문학, 특히 시에서 이룬 성취가 대단하였다. 남긴 시가 1500여 수에 달하며 작품집으로 두공부집(杜工部集)이 있다. 후세 사람들에게 그 자신은 시성(詩聖)으로, 또 그의 시는 시사(詩史)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 장씨[張氏]  이백(李白), 공소보(孔巢父), 배정(裵政), 한준(韓準), 도면(陶沔) 등과 더불어 죽계육일(竹溪六逸)이라 불렸던 장숙명(張叔明)일 것이라고도 하고, 연주(兗州) 사람 장개(張玠)일 것이라고도 한다. 장개(張玠)의 아들이 장건봉(張建封)인데 두보와 장개가 교분을 나눌 때 장건봉은 6·7세의 어린아이였다. 만년에 두보가 담주(潭州)서 장건봉을 만났는데, 호남(湖南) 관찰사(觀察使) 위지진(韋之晋)의 막중에서 좌청도병조참군(左淸道兵曹參軍)을 맡고 있었다. 그가 직(職)을 버리고 떠나 갈 때에 두보가 별장십삼건봉(別張十三建封) 시(詩)를 지어 주었다.
  • 지자[之子]  이 사람. 시경(詩經) 조풍(曹風) 후인(候人)에서, 소인이 은총을 받아 고관에 오른 것을 비평하여, “아, 저 소인이여, 복장이 도대체 걸맞지 않구나.[彼其之子 不稱其服]”라고 하였고, 시경(詩經) 양지수(揚之水)에 “느리게 흐르는 물이여, 나뭇단도 떠내려 보내지 못하도다. 저 그 사람이여, 나와 함께 신(申)나라로 오지 못하였도다. 그립고 그립나니, 어느 달에나 내 집에 돌아갈꼬.[揚之水 不流束薪 彼其之子 不與我戍申 懷哉懷哉 曷月予還歸哉]”라고 하였다.
  • 요인[邀人]  사람을 부르다. 다른 사람을 끌어들임.
  • 유유[呦呦]  시경(詩經) 녹명(鹿鳴)에 “정답게 부르며 사슴들이 울면서 들에 있는 사철 쑥을 뜯고 있네. 나에게 아름다운 손님이 있어 비파를 타며 젓대를 부노라. 젓대를 불며 생황을 연주하며 광주리로 받들어 폐백을 올리니 나를 좋아하는 분이여, 나에게 대도를 보여주소서.[呦呦鹿鳴, 食野之苹. 我有嘉賓, 鼓瑟吹笙. 吹笙鼓簧, 承筐是將. 人之好我, 示我周行.]”라고 하였다.
  • 편로[偏勞]  수고하다. 고생하다. 힘써 주다.
  • 노권[勞勸]  애써 일을 함. 힘들여 일함.
  • 두주[杜酒]  두강주(杜康酒). 술 이름인데 옛날 술을 잘 만들었던 두강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 두강은 중국의 황제(黃帝) 때의 재인(宰人)으로 최초로 술을 빚었다는 전설상의 인물인데, 후대에는 술의 이칭으로 쓰였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조조(曹操)의 단가행(短歌行)에 “슬퍼 탄식하여도 시름 더욱 깊어지니 근심스런 생각 잊기 어려워라. 어떻게 시름 풀어볼까 오직 두강뿐이로다.[慨當以慷 憂思難忘 何以解憂 唯有杜康]”라는 구절이 있다.
  • 두강주[杜康酒]  찹쌀로 한 번 덧술하여 만드는 술. 단시일 내 숙성되는 속성 주류이다. 옛날 중국에 두강이라는 술을 잘 빚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방법으로 술을 빚는다 하여 두강주라 불렀다 한다.
  • 장리[張梨]  장공(張公)의 배. 이 배는 맛이 아주 뛰어나서 천하에 오직 한 그루만이 있다고 칭할 만큼 진귀한 품종으로 알려졌다. 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장공(張公)의 대곡(大谷) 배, 양후(梁侯)의 오비(烏椑) 감, 주문(周文)의 약지(弱枝) 대추, 방릉(房陵) 주중(朱仲) 오얏 등이 있는데, 심을 수 없는 것들이다.[張公大谷之梨, 梁侯烏椑之柿, 周文弱枝之棗, 房陵朱仲之李, 靡不畢殖.]”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주석에 의하면, 낙양(洛陽)의 장공이란 사람이 대곡(大谷)에 살았는데, 그에게 아주 맛 좋은 하리(夏梨) 나무가 있었던바, 해내(海內)에 오직 이 한 그루뿐이었다고 한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