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지거[祁奚之擧]~기해거수[祁奚擧讎]~기해천자[祁奚薦子]

기해[祁奚]  진(晉)나라 대부(大夫) 고량백(高梁伯)의 아들이다.

기해[祁奚]  춘추(春秋)시대 진(晉)나라 대부(大夫)이다. 진(晉) 도공(悼公) 때 중군위(中軍尉)가 되었는데 늙어 물러날 때 도공이 후계자를 묻자 원수 관계인 해호(解狐)를 추천하였고, 부임하기 전에 해호가 죽자 자기의 아들 기오(祁午)를 추천하여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기(史記) 진세가(晉世家)에는 ‘祁傒(기혜)’, 대대례기(大戴禮記) 위장군문자(衛將軍文子)에는 ‘祁徯(기혜)’로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成公 8・15년, 襄公 3・16・21년>・<國語 晉語 7>・<呂氏春秋 去私>

기해지거[祁奚之擧]  기해(祁奚)는 춘추 시대 진(晉)나라 대부였는데, 그는 특히 공평무사(公平無私)한 마음으로 자기 후임자(後任者)를 천거한 일로 이름이 높았다. 기해가 늙어서 중군위(中軍尉)의 사직을 청했을 때 진 도공(晉悼公)이 그의 후임자로 누가 적당한가를 묻자, 그가 자기 원수인 해호(解狐)를 적합하다고 추천하였다. 도공이 해호를 그 자리에 임명하려고 했으나 해호가 이내 죽자, 다시 누가 좋겠느냐고 물으니, 기해는 자기 아들인 기오(祁午)가 적합하다고 하였다. 또 그의 보좌관인 양설직(羊舌職)이 죽자, 도공이 양설직의 후임자에 누가 좋겠느냐고 물으므로, 기해가 양설직의 아들인 양설적(羊舌赤)이 적합하다고 대답함으로써, 마침내 기해의 아들 기오를 중군위로 삼고, 양설적을 기오의 보좌관으로 삼았다. 이 일을 두고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기해는 능히 좋은 사람을 천거하였다. 그는 그의 원수를 천거했으나 아첨한 것이 아니었고, 아들을 후임으로 세웠으나 두둔한 것이 아니었으며, 가까운 사람을 천거했으나 아당한 것이 아니로다. 상서(商書)에 이르기를 ‘치우치지도 않고 아당하지도 않아서 왕도는 공평무사하다.’라고 했으니, 기해를 두고 이른 말이로다.[祁奚於是能擧善矣 稱其讎 不爲諂 立其子 不爲比 擧其偏 不爲黨 商書曰 無偏無黨 王道蕩蕩 其祁奚之謂矣]”라고 하였다 한다. <春秋左氏傳 襄公3年>

기해거수[祁奚擧讎]  기해(祁奚)가 원수를 천거함. 진(晉)나라 기해가 공평무사해서 원수인 해호(解狐)와 자기 아들인 기오(祁午)를 진 도공(晉悼公)에게 천거했다고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1년에 “기 대부가 외거하며 원수도 버리지 않았고, 내거하며 친척도 멀리하지 않았다.[祁大夫外擧不棄讎 內擧不失親]”라는 말이 나오는데, 기 대부는 기해를 가리킨다. 외거(外擧)는 외부 사람을 천거하는 것이고, 내거(內擧)는 내부 사람을 천거하는 것을 말한다. 기해천수(祁奚薦讐).

기해천자[祁奚薦子]  기해(祁奚)가 아들을 천거함. 기해(祁奚)는 춘추 시대 진(晉)의 현대부(賢大夫)이다. 기해가 나이 많아 퇴로(退老)를 청하자, 진 도공(晉悼公)이 후계자를 물으니, 자기와 원수인 해호(解狐)를 천거했다. 그러나 곧 해호가 죽었으므로 다시 물으니 기해는 자기의 아들 오(午)를 천거하였다. 이때 마침 양설적(羊舌職)이 죽었으므로 그의 후계자를 물었더니 양설직의 아들 적(赤)을 천거하였다. 이 때문에 도공은 기오를 중군위(中軍尉)에, 양설적을 부(副)로 임명하였는데, 군자는 평하기를 “기해는 사람을 잘 천거했다. 원수를 천거했지만 아첨한 것이 아니고 자기 아들을 세웠지만 사사로운 것이 아니며, 자기와 친한 사람을 천거했지만 편당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春秋左傳 襄公 三年> 기해거자(祁奚擧子).

기해[氣海]  의가(醫家)의 용어로, 사람 신체의 정기(精氣)가 모인다고 하는 배꼽 아래 1치 5푼쯤 되는 곳을 가리킨다. 하단전(下丹田).

기해혈[氣海穴]  인체의 정중선, 곧 임맥(任脈)상의 혈자리로 배꼽 아래 1.5촌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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