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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례[吉禮]~길료[吉了]~길리[吉利]~길망[吉網]~길무불리[吉無不利]


길기[吉期]  졸곡(卒哭)일에 거행하는 길제(吉祭)를 말한다. 예기(禮記) 단궁편(檀弓篇)에 “졸곡(卒哭)을 성사(成事)라 이르는데, 이 날에는 길제(吉祭)로써 상제(喪祭)를 바꾼다.”고 하였다.

길례[吉禮]  가례(家禮) 상례(喪禮) 졸곡(卒哭)에 이르기를 “단궁(檀弓)에 ‘졸곡을 성사(成事)라 한다.’고 하였으니, 이날이다. 길제(吉祭)를 상제(喪祭)와 바꾸기 때문에 이 졸곡제는 점점 길례를 사용한다.”라고 하였다.

길료[吉了]  새 이름으로 진길료(秦吉了)의 준말이다. 구당서(舊唐書) 음악지(音樂誌)에 “영남(嶺南)에 새가 있으니 구합(鸜鵒)과 같이 생겼으나 조금 크고 얼른 보아서는 분간하기 어렵다. 새집에 두고 오래 기르면 못하는 말이 없으니, 남인(南人)들이 ‘길료(吉了)’ 또는 ‘료(料)’라 하였다.[嶺南有鳥, 似鸜鵒而稍大, 乍視之, 不相分辨. 籠養久, 則能言, 無不通, 南人謂之吉了, 亦云料.]”라고 보인다. <舊唐書 音樂誌>

길리[吉利]  길(吉)하다.

길리[吉利]  병기(兵器)가 잘 갖추어지고, 군사가 정예롭고, 군량이 충분하여 밖으로는 적에게 침략 당하지 않고 안으로는 내란의 위험이 없어서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이른다. <選擇紀要>

길리[頡利]  길리는 당 태종 때 돌궐족(突厥族)의 왕인데 강한 군사력으로 해마다 중국을 침공하여 괴롭히다가 병부 상서 이정(李靖)에게 패하여 장안(長安)으로 압송된 뒤 귀순하여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을 지냈다. <唐書 卷二百十五上 突厥上>

길망[吉網]  당(唐)나라 천보(天寶) 초년에 정승 이임보(李林甫)의 앞잡이가 된 어사 길온(吉溫)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고 형벌을 가혹하게 내려 당시에 이를 길망(吉網)이라고 하였다. <舊唐書 卷186 酷吏列傳下 吉溫> <新唐書 卷209 酷吏列傳>

길무불리[吉无不利]  주역(周易) 대유(大有) 상구(上九)에 이르기를 “하늘이 보우하사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自天祐之 吉无不利]”라고 하였다.

길무불리[吉無不利]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하늘로부터 돕는지라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自天祐之, 吉无不利.]”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길백도[桔柏渡]  길백도는 곧 문주(文州)와 가릉(嘉陵)의 두 강물이 합류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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