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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구궁[洛書九宮]~낙설분[落屑紛]~낙성칭피현[樂聖稱避賢]

낙서[洛書]  하(夏) 나라의 우(禹) 임금이 홍수(洪水)를 다스릴 때에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그려져 있었다는 45개의 점으로 된 그림이다. 중앙에 5개의 점이, 남・북・동・서쪽에 각각 9・1・3・7개의 점이, 동남・동북・서남・서북쪽에 각각 4・8・2・6개의 점이 그려져 있다. 서경(書經)의 홍범구주(洪範九疇)와 팔괘(八卦)의 근원이 되었다.

낙서[洛書]  낙서는 하 우왕(夏禹王) 때에 낙수(洛水)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1에서 9까지 나열된 반점인데, 우왕이 이를 보고 서경(書經)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지었다 하여, 역(易)의 원리와 함께 천지 만물의 중요한 원리로 간주되어 왔다. 뒤에 기자(箕子)가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전하니, 서경(書經)의 홍범(洪範)이 바로 그 내용이다.

낙서[洛書]  하우씨(夏禹氏)가 홍수(洪水)를 다스릴 때에 낙수(洛水)에서 신귀(神龜)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마흔다섯 점의 글씨로,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의 원본(原本)이 되었다. 한서(漢書) 오행지(五行志)에 “우 임금이 홍수를 다스림에 하늘이 낙서를 내려 주므로 이것을 본받아 진열하니, 홍범이 이것이다.[禹治洪水 賜洛書法 而陳洪範是也]”라고 보인다.

낙서구궁[洛書九宮]  하(夏) 나라의 우(禹) 임금이 홍수(洪水)를 다스릴 때에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있었다고 하는 45점으로 된 무늬. 이른바 구궁(九宮)은 그 무늬의 2・4가 어깨가 되고, 6・8은 발이 되며, 좌는 3이고, 우는 7이며, 9는 이고 있고, 1은 밟고 있으며, 5는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낙서수[洛書數]  낙서(洛書)의 숫자는 45이다.

낙서현상[洛書玄象]  우(禹)가 낙수(洛水)에서 거북이 지고 나온 글인 낙서(洛書)을 보고 구주(九疇)를 발견하였는데 그것을 기자(箕子)가 주 무왕(周武王)에게 말해 주었다 한다. 현상은 미묘한 상(象)이다.

낙선방(樂善坊]  조선 시대 초기부터 있던 한성부 남부 11방 중의 하나로, 중구 퇴계로 지역이다.

낙설분[落屑紛]  가루가 떨어진다는 것은, 진(晉)나라 때 왕징(王澄)이 어떤 이에게 보낸 편지에 “호언국(胡彦國)은 훌륭한 언론을 뱉는 것이 마치 끊임없이 쏟아지는 톱밥과 같으니, 참으로 후진(後進)들의 영수(領袖)가 될 만하다.[彥國吐佳言如鋸木屑, 霏霏不絕, 誠為後進領袖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四九 胡毋輔之傳>

낙성[洛城]  낙양(洛陽)을 가리킨다.

낙성[落星]  삼국(三國) 시대 오(吳) 나라 수도(首都)에 손권(孫權)이 세웠다는 큰 누각의 이름이다. 지금의 강소성 남경(南京) 동북쪽 10리에 있다. 서기 232년에 계림원(桂林苑)에 3층의 누각을 지었다는 기록이 금릉지기(金陵地記)에 보이는데, 이것이 그 누각이다. 유성이 가까이 떨어질 만큼 높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낙성칭피현[樂聖稱避賢]  두보(杜甫)의 시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좌상은 날마다 주흥으로 만전을 허비하여, 술을 큰 고래가 백천을 들이마시듯 하고, 술 마실 땐 청주만 즐기고 탁주는 피한다 하네.[左相日興費萬錢 飮如長鯨吸百川 銜杯樂聖稱避賢]”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2> 청주(淸酒)를 성인(聖人), 탁주(濁酒)를 현인(賢人)에 비유해서 풀이하기도 한다. 청탁성현(淸濁聖賢)은 위무제(魏武帝)가 금주령을 내리자 애주가들이 은어로 사용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다르게는 성(聖)이 애주(愛酒)를 뜻하기도 한다. 술을 즐겨 마시는 게 현인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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