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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落鴈]~낙안봉[落鴈峰]~낙양[雒陽]~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


낙안[落鴈]  유명한 소상팔경(瀟湘八景) 중 하나로, 기러기가 백사장에 내려앉는 광경인 평사낙안(平沙落鴈)을 뜻한다.

낙안[落雁]  한(漢)나라 왕소군(王昭君)은 재주와 용모를 갖춘 미인이었다. 한나라 원제는 북쪽의 흉노과 화친을 위해 왕소군을 선발하여 선우와 결혼을 하게 하였다. 집을 떠나가는 도중 그녀는 멀리서 날아가고 있는 기러기를 보고 고향생각이 나 금(琴)을 연주하자 한 무리의 기러기가 그 소리를 듣고 날개 움직이는 것을 잊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에 왕소군은 낙안(落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낙안[樂安]  현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지역이다.

낙안봉[落鴈峰]  중국 5악의 하나인 섬서성(陝西省) 화산(華山)의 남봉(南峰)이다. 화산지(華山志)에 “이백(李白)이 낙안봉에 올라 말하기를 ‘이 봉우리가 호흡하는 기가 상제(上帝)의 좌석에 닿을 것 같다. 사조(謝朓)의 경인시(驚人詩)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한스러운데, 머리 긁적이며 푸른 하늘에 물어볼 뿐이다’라고 했다.[李白登華山落鴈峯曰: 此處呼吸之氣, 想通帝坐, 恨不携謝眺驚人詩來, 搔首問青天耳.]”고 하였다.

낙양[洛陽]  일본의 산성주(山城州)를 가리킨다. 일본에는 세 개의 도읍이 있는데, 첫째가 산성주이고, 둘째가 대판(大阪)이고, 셋째가 강호(江戶)이다.

낙양[洛陽]  낙양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이다. 역대로 수도(首都)였기 때문에 전하여 수도(首都)를 뜻하기도 한다. 당(唐)의 동도(東都)였다.

낙양[雒陽]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낙양시(洛陽市) 동북쪽으로 삼국 시대에 그 명칭을 낙양(洛陽)으로 고쳤다.

낙양[雒陽]  雒(낙)은 본래 洛(낙)으로 썼으니, 성주(成周)의 낙양(洛陽)이다. 어환(魚豢)의 위략(魏略)에 이르기를 “광무제(光武帝)가 한(漢)나라는 화행(火行:화덕火德)이어서 水(수)를 꺼리므로 洛(락)자에 水(수)를 버리고 隹(추)를 가했다.”고 하였다. 광무제(光武帝) 이후로 雒(락)자로 고쳤으니, 그 지역이 성고(成皐)의 서쪽, 완현(宛縣)의 북쪽에 있다.

낙양고사[洛陽故事]  문언박(文彦博)이 서경 유수(西京留守)로 있을 때에 백거이(白居易)의 구로회(九老會)를 모방하여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등 13인의 학덕(學德) 높은 노인들과 함께 만든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말한다.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  송(宋)나라 문언박(文彦博)이 결성한 모임으로 낙사기영(洛社耆英)이라고도 한다. 문언박이 서도유수(西都留守)로 낙양(洛陽)에 있을 적에 당(唐)나라 백거이(白居易)의 구로회(九老會)를 본떠서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등 사대부들 가운데 연로하고 어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술자리를 베풀며 즐겼는데, 주인과 손님이 모두 열두 명이었다고 한다. <宋史 卷313 文彦博列傳>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  기영회(耆英會)를 처음 만들 때 사마온공은 64세의 나이로 아직 일흔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 그의 사람됨을 귀중하게 여겨온 문언박이 당나라 구로회 결성 당시, 비서감 적겸모와 하남 윤 노정이 나이 70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로회 회원에 들지는 않았으나 모임에는 참여했던 고사를 전례로 하여 사마온공에게 기영회에 참여할 것을 권하였다. 이에 사마온공이 감히 문언박과 부필의 뒤에 함께 이름을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사양하였다. 그러나 문언박은 사마온공의 사양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환으로 하여금 막후에서 사마온공의 초상화를 보내오게 하였다. 또 북경으로 가서 왕공신의 초상화를 가져왔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45 洛陽耆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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