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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난[赧赧]~난대석실[蘭臺石室]~난대승명[鑾臺承明]~난대필[蘭臺筆]


난난[赧赧]  난난은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는 모양인데, 이는 곧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아첨을 하다가 양심에 가책을 받아 얼굴이 붉어진 것으로, 자로(子路)가 말하기를 “뜻이 같지 않은데도 억지로 남의 비위를 맞춰 말하는 자는 그의 얼굴을 보면 부끄러워 붉어진다. 그런 사람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다.[未同而言, 觀其色赧赧然, 非由之所知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下>

난난[暖暖]  유순하다. 얌전하다. 온화하다.

난난[爛爛]  밝게 빛나는 모양. 반짝거리는 모양. 색채가 화려한 모양.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 편에 “배해(裴楷)가 지적하기를 ‘왕융(王戎)의 눈은 마치 바위 아래에 치는 번개처럼 번쩍거린다.[爛爛]’고 하였다.”라는 표현이 나오고, 속담조(續談助) 4에 인용된 소설(小說)에서는 “왕이보(王夷甫)가 나가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양 눈동자가 번쩍거리는 것[雙眸爛爛]이 마치 바위 아래에 번개가 치는 것과 같소.’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시경(詩經) 정풍(鄭風) 여왈계명(女曰雞鳴)의 “샛별이 반짝인다.[明星有爛]”에 대한 정현(鄭玄)의 전(箋)에는 “샛별이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다.[明星尙爛爛然]”라고 풀이하였다.

난능려곡[蘭能儷曲]  곡조가 유란백설곡과 짝할만 함. 송옥(宋玉) 풍부(諷賦)에 “그 안에 거문고가 있기에 신(臣)이 그를 안고 뜯다가 유란곡(幽蘭曲)·백설곡(白雪曲)을 만들었지요.[中有鳴琴焉, 臣援而鼓之, 為幽蘭白雪之曲.]”라 하였다.

난니보[爛泥堡]  요동성 인근에 있는 지명으로, 하루면 닿는 거리에 있다. 난니보는 진펄[沮洳]로 유명하다. <夢經堂日史 第1篇 馬訾軔征紀>

난대[蘭臺]  난대는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누대 이름이다. 초나라 양왕(襄王)이 난대에서 노닐 때 송옥(宋玉)이 함께 모시고서 풍부(風賦)를 읊은 일이 있다. <文選 卷7 風賦 序>

난대[蘭臺]  난대는 당(唐)나라의 비서성(秘書省)의 별칭이다. 도서를 비장(祕藏)한 곳으로 난대령사(蘭臺令史)를 두어 관장하게 하였는데 뒤에 비서성(秘書省)을 고쳐 난대라 하였다. 조선의 예문관(藝文館)과 홍문관 또는 춘추관(春秋館)이 같은 기관에 해당한다.

난대[蘭臺]  난대는 한나라 때 궁중의 장서각 이름인데, 반고(班固)가 난대 영사(蘭臺令史)로서 후한서(後漢書)를 편찬하였다. <後漢書 卷1 光武帝紀>

난대[蘭臺]  어사대(御史臺).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의 별칭이다.

난대부[蘭臺賦]  전국 시대 초(楚) 나라 양왕(襄王)이 난대(蘭臺)에서 노닐 때 송옥(宋玉)이 함께 모시고서 풍부(風賦)를 읊은 일이 있다. <文選 風賦 序>

난대석실[蘭臺石室]  난대(蘭臺)는 한(漢)나라 때 궁중(宮中)에 있었던 장서각(藏書閣)의 이름이며, 석실(石室)은 돌로 꾸민 견고한 집으로 책을 간직하는 서고(書庫)를 가리킨다.

난대승명[鑾臺承明]  난대(鑾臺)는 한림원(翰林院)을 가리키고, 승명(承明)은 한(漢)나라 때 임금의 침소(寢所)인 승명전(承明殿) 곁에 있던 승명려(承明廬)로, 시신(侍臣) 들이 직숙하던 곳이다.

난대필[蘭臺筆]  난대(蘭臺)는 한림(翰林)의 별칭이다. 난대필(蘭臺筆)은 한림의 글재주란 의미로, 뛰어난 글재주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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