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변자웅오[難辨雌雄烏]~난병불철[亂兵不輟]~난보[蘭報]

난변자웅오[難辨雌雄烏]  시비를 가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에 “모두 내가 성인이다 하니 누가 까마귀의 암놈과 수놈을 알겠는가?[俱曰予聖 誰知烏之雌雄]”라고 하였는데, 까마귀의 암놈・수놈을 가려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시비를 분간하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난병불철[亂兵不輟]  난리와 전쟁이 그치지 않음. <國語 晉語 八> 목후(穆侯)가 두 아들을 두니 태자(太子) 구(仇)와 성사(成師)이다. 목후가 죽은 뒤 목후의 아우 상숙(殤叔)이 태자를 축출하고 군주가 되었으나 태자가 다시 상숙을 시해하고 군주 자리에 등극하여 문후(文侯)가 되었다. 문후가 아우 성사를 곡옥(曲沃)에 봉하니 사람들이 그를 곡옥환숙(曲沃桓叔)이라 불렀다. 문후가 죽은 뒤 태자 소후(昭侯)가 등극하여 환숙을 다시 곡옥백(曲沃伯)에 봉하였다. 이때 반부(潘父)가 소후를 시해하고 환숙을 맞이하여 옹립하고자 하였으나 진나라 사람들의 반대로 환숙이 다시 곡옥으로 쫒겨 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진나라는 두 세력으로 나뉘어져 싸우게 되었고 결국 환숙의 손자 무공(武公)이 진나라를 통일하였다. 이후로도 헌공(獻公) 시대에 다시 여희(驪姬)의 장난으로 많은 내란과 전쟁을 겪었다.

난보[爛報]  난보는 청(淸)나라 조정에서 관원들에게 통보하는 관보(官報)를 이른다. 똑같은 제도가 조선조에도 있었는바, 승정원(承政院)에서 처리한 사항을 매일 아침 서리(書吏)가 베껴서 소속 군사(軍士)로 하여금 조정의 관원들에게 배포하게 하였는데, 이를 조보(朝報)라고도 하였다. 또 각 군현의 경주인(京主人)들이 이를 다시 베껴서 수령에게 보내고 이를 기별(奇別)이라고 일컬었으므로, 세속에서는 난보를 기별이라고도 불렀다.

난보[蘭報]  경란지보(耿蘭之報)의 준말. 상(喪)의 소식을 전해 온 경란(耿蘭)의 편지라는 뜻으로, 한유(韓愈)의 조카인 한노성(韓老成)의 죽음을 집안의 하인인 경란(耿蘭)이 한유에게 전해 준 데에서 유래한 말로 보통 부고(訃告)라는 뜻으로 쓰인다. 한유(韓愈)의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에 조카의 죽음을 슬퍼하며 “이게 꿈이지 전해 온 소식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동야의 글과 경란의 편지가 어찌하여 내 곁에 있단 말인가. 슬프다, 참이로구나.[夢也傳之非其眞也 東野之書 耿蘭之報 何爲而在吾側也 嗚呼 其信然矣]”라고 하였다. <韓昌黎文集 卷23 祭十二郞文>

난보지경[難保之境]  보존(保存)하기 힘든 지경(地境).

난보지폐[難保之弊]  보전하기 어려운 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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