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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봉개구소[難逢開口笑]~난봉서비극[鸞鳳棲非棘]~난봉소[鸞鳳嘯]


난봉[鸞鳳]  상상 속의 신령스러운 새, 난새와 봉황을 가리킨다. 난새와 봉황은 모두 서조(瑞鳥)이므로, 뛰어난 인물(人物), 어질고 빼어난 선비, 즉 현준지사(賢俊之士)를 가리킨다. 후한(後漢) 때 왕환(王渙)이, 구람(仇覽)이 주부(主簿)를 맡고 있는 것을 보고 큰 인재가 작은 자리에 앉았다고 여겨 “탱자 가시는 난봉이 깃들 곳이 아니니, 백리(百里)의 작은 고을이 어찌 대현(大賢)이 있을 곳이겠는가?”라 하였다. <後漢書 卷106 循吏傳 仇覽傳>

난봉[鸞鳳]  난새와 봉황. 부부. 어질고 재주가 뛰어난 인물. 군왕. 부부. 서경잡기(西京雜記)에 “무제의 궤에는 온통 교룡, 난새, 봉황, 거북과 기린 등의 모양이 새겨져 있다.[武帝匣上皆鏤爲蛟龍鸞鳳龜麟之象]”고 한 대목이 있다.

난봉[亂峰]  들쭉날쭉 높이가 가지런하지 않은 봉우리들을 이른다.

난봉개구소[難逢開口笑]  두목(杜牧)의 구일제산등고(九日齊山登高) 시에 “속세에 입 벌리고 웃을 일은 만나기 어려우니, 국화나 응당 머리에 가득 꽂고 돌아가련다.[塵世難逢開口笑 菊花須揷滿頭歸]”라고 하였다.

난봉대각[鸞鳳臺閣]  난봉(鸞鳳)은 현사(賢士)를 비유한 말이고, 대각(臺閣)은 조정(朝廷)을 가리킨 것으로, 현사들이 조정에 모인 것을 의미한다.

난봉서비극[鸞鳳棲非棘]  후한(後漢) 때 고성 영(考城令) 왕환(王渙)이 엄맹(嚴猛)한 정사를 숭상하다가, 그 고을 포(蒲)의 정장(亭長)인 구람(仇覽)이 덕으로 사람을 교화시킨다는 말을 듣고 그를 주부(主簿)로 삼은 다음 그에게 말하기를 “주부는 진원(陳元)이란 사람의 죄과를 듣고도 처벌하지 않고 그를 교화시켰다 하니, 응전(鷹鸇) 같은 맹렬한 뜻이 적은 게 아닌가?”라고 하니, 구람이 말하기를 “응전은 난봉(鸞鳳)만 못합니다.”라고 하므로, 왕환이 사과하고 그를 보내면서 말하기를 “가시나무는 난봉이 깃들 곳이 아니거니, 백 리 고을이 어찌 대현이 있을 곳이리오.[枳棘非鸞鳳所棲 百里豈大賢之路]”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난봉이 가시나무에 깃든다는 것은 곧 현사(賢士)가 낮은 지위에 있음을 의미한다.

난봉소[鸞鳳嘯]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은 술을 매우 즐겨 마셨고, 휘파람을 대단히 잘 불어서 금조(琴操)와 조화를 잘 이루었다고 하며, 진류(陳留)에 그의 소대(嘯臺)가 있다. 그는 또 일찍이 소문산(蘇門山)에 올라가 은사(隱士) 손등(孫登)을 만나서 여러 가지 얘기를 해 보았으나 손등이 전혀 대꾸를 하지 않으므로, 그가 마침내 휘파람을 길이 불면서 내려가는데, 산 중턱쯤 내려갔을 때 마치 난봉(鸞鳳) 같은 아름다운 소리가 암곡(巖谷)에 울려 퍼졌던바, 그게 바로 손등의 휘파람 소리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난봉어[鸞鳳馭]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의 딸 농옥(弄玉)이 남편 소사(蕭史)와 함께 신선이 되어 난봉(鸞鳳)을 타고 승천했다는 전설에서 온 말로, 전하여 죽음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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