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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삼[襴衫]~난삼연건[襴衫軟巾]~난삽[難澁]


난삼[襴衫]  과거 급제 옷. 1746년(영조22)부터 생원・진사의 합격자를 발표할 때 합격자가 착용한 옷으로, 녹색이나 검은색의 단령(團領)에 각기 같은 색의 선을 둘렀다. 이때 머리에는 복두(幞頭) 또는 연건(軟巾)를 착용하고 허리에는 대대(大帶)를 찼다. 그 이전에는 유건(儒巾)과 청삼(靑衫)을 착용하던 것을 영조가 안동(安東) 향교에 있는 복식을 보고 개정한 것이다. <英祖實錄>

난삼[襴衫]  생원(生員)이나 진사(進士)에 합격(合格)된 때에 입던 예복(禮服)으로, 녹색(綠色)이나 검은빛의 깃을 둥글게 만든 공복(公服)에 각기 같은 빛의 선을 둘렀다. 주자는 저고리[衣]와 치마[裳]가 서로 연결된 것을 ‘난(襴)’이라 한다고 하였다. 난삼(幱衫).

난삼[襴衫]  복식(服飾). 관리들의 공복(公服) 또는 학인(學人)들이 입는 옷을 가리킨다. 난삼(幱衫)이라고도 하는데, 상하의가 이어진 삼베옷이다. 당(唐)나라 때의 의복으로, 상의(上衣)와 하상(下裳)이 이어져 있으며, 소매가 없는 옷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옷은 심의(深衣)와 비슷하며, 길복(吉服)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난삼[襴衫]  사인(士人)들이 입던 옷으로 북주(北周) 때부터 입기 시작하여 명청(明淸)대까지 유행하였다. 송사(宋史) 권153 여복지(輿服志)에 “난삼은 백세포(白細布)로 만들며 단령(團領)에다 소매가 길며, 아랫부분에 가로로 난(襴)을 잇대어 치마를 만들고 허리 부분에 주름을 넣은 적삼으로 진사(進士)와 국자생(國子生) 및 주현생(州縣生)들이 입었다.”라고 하였다. 한편 성호사설(星湖僿說) 제6권 난삼(襴衫)에 “이 난삼이란 옛날에는 없던 것이다. 가례(家禮)에는 관례(冠禮)에 쓰도록 되어 있으나 아마도 당시 풍속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완위여편(宛委餘編)에 이르기를 ‘후위(後魏) 시대에 말 타는 데는 호복(胡服)이 편리하다 하여, 드디어 저고리에다 횡폭(橫幅)으로 된 치마를 이어서 통옷을 만들게 되었다. 이것을 난삼이라고 하는데, 지금 소위 공상(公裳)이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오랑캐의 옷을 학사(學士)와 대부(大夫)들까지도 모두 좋게 여기고 고치지 않은 것은 풍속이 같아졌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본래 이 제도가 없었는데도 오히려 가례(家禮)의 글을 따라 누구든지 아들이 관례를 하게 되면 반드시 중국 저자에 가서 사 오게 되니, 이는 너무나 모르는 일이라 하겠다.”라고 하였다.

난삼[襴衫]  상의(上衣)와 하상(下裳)이 서로 연결된 옷으로, 삼(衫)의 아랫부분에 가로로 난(襴)을 잇대어 상(裳)의 모양새를 만든 옷이다. 북주(北周) 때부터 입기 시작하였으며, 사인(士人)들이 주로 입었다.

난삼연건[襴衫軟巾]  난삼(襴衫)과 연건(軟巾)은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자들이 백패(白牌)를 받을 때에 입던 예복이다.

난삽[難澁]  난삽하다. 필요 이상으로 어렵고 산만해서 내용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글이나 말이 매끄럽지 못하면서 어렵고 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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