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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원차[南民願借]~남반유생[南班儒生]~남발이증[攬髮而拯]


남민[南敏]  원래 당나라의 여남(汝南) 사람인 금충(金忠)인데, 755년에 당나라의 안렴사(按廉使)로서 일본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태풍을 만나 영덕(盈德) 앞의 섬에 표류하게 되자 신라에 영주하기를 원하였다. 이에 경덕왕이 이 사실을 당나라 현종(玄宗)에게 알리고 신라의 백성으로 받아 주었다. 경덕왕은 그가 여남에서 왔다고 하여 남씨(南氏) 성(姓)을 하사하고 이름을 민으로 고쳐 부르게 하였으며, 영양현(英陽縣)을 식읍으로 내렸는데, 남민은 이로써 영양 남씨의 시조가 되었다. 의령 남씨는 영양에서 분파(分派)되었다.

남민원차[南民願借]  남쪽 백성들이 수령을 빌려줄 것을 원함. 선정(善政)을 베푼 수령이 재차 그 고을에 부임해 줄 것을 바란다는 말이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 구순(寇恂)이 하내(河內)·영천(潁川)·여남(汝南)의 태수(太守)를 연임하며 선정을 베풀다가 여남 태수를 그만두고 조정에 들어와서 집금오(執金吾)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구순(寇恂)이 광무제(光武帝)를 따라 영천(潁川)의 도적을 평정하고 돌아오려 할 때 백성들이 길을 막고 “구순을 1년 동안 빌려 달라.[借寇君一年]”라고 간청하자 그곳에 머물면서 백성들을 위로하게 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구순을 1년 동안 빌려 달라.’는 말은 ‘1년 동안만 구순을 우리 고을의 수령으로 있게 하여 달라.’는 말이다. <後漢書 卷16 寇恂列傳>

남반[南班]  고려 때에 임금의 시중을 들거나 명령을 전달하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아치를 이른다.

남반유생[南班儒生]  서출(庶出)로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유생을 이른다. 무명자집(無名子集)에 “근래에 서출로서 생원・진사에 합격한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남쪽 대청에 들어가기 때문에 남반(南班)이라고 일컫는다.”라고 하였다.

남반유혐배반비[南畔唯嫌北畔非]  주자(朱子)의 답택지사시(答擇之四詩)에 “동쪽 가에서는 서쪽 가의 옳음을 보지 못하고, 남쪽 가에서는 북쪽 가의 그름을 싫어하네.[東頭不見西頭是 南畔唯嫌北畔非]”라고 하였다. <朱子大全 卷5>

남발이증[攬髮而拯]  물에 빠진 사람은 머리털을 잡아당겨 건진다는 뜻으로, 위급(危急)한 때에는 사소(些少)한 예의(禮儀)를 차리지 않음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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