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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초려[南陽草廬]~남양포슬[南陽抱膝]~남역두속[男易斗粟]


남양초려[南陽草廬]  남양은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현(縣)으로, 한나라 말기에 제갈량(諸葛亮)이 출세하기 전에, 남양현의 와룡강(臥龍岡)에 숨어 살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와룡(臥龍)이라 하였는데, 유비(劉備)가 제갈량을 등용하기 위해 와룡강에 있는 초려(草廬)로 세 번 찾아간 일이 있다.

남양포슬[南陽抱膝]  남양(南陽)은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이 출사(出仕)하기 전 은거했던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몸소 농사지으며 생활하였는데, 매일 새벽과 저녁에 무릎을 감싸 안은[抱膝] 채 양보음(梁甫吟)이란 노래를 길게 불렀다고 한다. 천하에 뜻을 품은 선비가 울울한 심정을 토로함을 뜻한다. <三國志 卷35 諸葛亮傳> 포슬음(抱膝吟).

남양포슬소[南陽抱膝嘯]  남양(南陽)은 삼국 시대 촉(蜀)나라의 제갈량(諸葛亮)이 은거했던 곳이다. 삼국지(三國志) 권35 제갈량전(諸葛亮傳)에 제갈량이 남양에 은거하였을 때 양보음(梁父吟) 읊기를 좋아하였다는 내용이 있는데, 배송지(裴松之)의 주석에 따르면 제갈량은 아침저녁으로 한가할 때마다 무릎을 안고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고 한다.

남여[籃輿]  남여(籃輿)는 고대에 사람을 앉혀 나르던 교통도구로 메고 가는 것은 가마와 비슷하지만 덮개가 없고 생긴 모습이 의자를 닮은 것을 가리킨다. 송서(宋書) 은일전(隱逸傳) 도잠(陶潛)에서 “잠이 각질을 앓고 있어 문하생과 두 아들에게 가마를 지게 했다.[潛有脚疾, 使一門生二兒轝籃輿.]”라고 하였다.

남여[籃輿]  남여는 대를 엮어서 만든, 의자 비슷하고 위를 덮지 아니한 작은 승교(乘轎)이다. 앞뒤를 각각 두 사람이 어깨에 메는 뚜껑이 없는 작은 가마로, 주로 좁은 길이나 산길을 갈 때 이용되었다. 진(晉)나라 도잠(陶潛)이 평소 각질(脚疾)이 있어 항상 남여를 타고 한 문생(門生)과 두 아들로 하여금 남여를 메게 하고는 가는 곳마다 흔연히 술을 마셨다는 고사가 있다.

남역두속[男易斗粟]  한유(韓愈)의 시 부강릉도중(赴江陵道中)에 “전해 듣건대 민간에서는, 어린아이를 도랑에 버리기도 하고, 아들을 팔아서 한 말의 곡식과 바꾸려 해도, 손을 내저으며 응수도 하지 않는다네.[傳聞閭里間 赤子棄渠溝 持男易斗粟 掉臂莫肯酬]”라고 하였다. <韓昌黎集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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