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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南兗]~남염[南閻]~남영주[南榮趎]


남연[南淵]  경북 임하현(臨河縣) 서쪽에 있는 금소(琴召)에서 남쪽으로 3리 정도 지점에 있던 남연사(南淵寺)를 가리키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남연[南兗]  연(兗)은 연주(演奏)이다. 지금의 중국 산동성(山東省) 남부와 강소성(江蘇省) 북방은 옛날에 연주(兗州)에 속하였는데, 그후에 강소성 남부를 남연주라고 한 때가 있었다.

남연군[南延君]  남연군은 이구(李球)로 고종의 생부(生父)인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부친이다. 인조의 아들인 인평대군(麟平大君)의 6세손 병원(秉源)의 둘째 아들이다. 처음 이름은 채중(寀重)이었으나, 은신군(恩信君)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개명하였다. 그의 묘는 원래 경기도 연천(漣川)에 있었으나, 1846년(헌종12)에 흥선대원군이 충청도 예산군 덕산의 가야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에 절을 없애고 이장하였다.

남염[南閻]  불교 용어인 남염부제(南閻浮提)의 준말로, 수미산(須彌山) 사대주(四大洲)의 남주(南洲)에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남염부주(南閻浮洲) 혹은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도 한다. 원래는 인도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인간 세상의 총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長阿含經 卷18 閻浮提洲品>

남영[南榮]  초사(楚辭) 중 왕포(王褒)의 구회(九懷) 사충(思忠)에 “현무가 걷네, 수모도. 나와 약속했지 남영에서[玄武步兮水母 與吾期兮南榮]”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왕일(王逸)은 주석에서 “남쪽은 겨울에도 따뜻해 초목이 늘 무성하므로 남영이라 부른다.[南方冬溫 草木常茂 故曰南榮]”라고 하였다.

남영[南榮]  경상초(庚桑楚)의 제자로 도를 듣기 위해 식량을 싸서 지고 7일 밤낮을 걸어서 노자(老子)가 있는 곳을 찾아갔던 남영주(南榮趎)를 말한다. 그가 노자를 찾아갔을 때, 노자가 그에게 어찌하여 중인(衆人)들과 함께 왔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남영주는 실제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간 것이 아니다. 지(知)와 부지(不知), 인(仁)과 불인(不仁), 의(義)와 불의(不義) 이 세 가지를 분별하는 입장에서는 중인들과 차이가 없다는 점을 일깨우기 위해 물은 것이다. 이러한 분별을 벗어나야 자신의 본성을 찾아서 생명을 지켜나갈 길을 찾을 수 있음을 일깨워준 것이다. <莊子 庚桑楚>

남영주[南榮趎]  경상초(庚桑楚)의 제자로서 도(道)를 듣기 위해 식량을 싸지고 이레 낮 이레 밤을 걸어 노자(老子)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한다. <莊子 庚桑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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