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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약간[南人約簡]~남인역록[南人轣轆]~남자[南子]

남인부[南人賦]  남인은 곧 남초(南楚) 지방 사람을 가리킨 것으로, 전국 시대 초 회왕(楚懷王)의 충신 굴원(屈原)이 소인의 참소로 인해 조정으로부터 쫓겨나서 울분을 토로하여 지은 이소(離騷)를 말한다.

남인약간 북학심무[南人約簡 北學深蕪]  북사(北史) 유림전서(儒林傳序)에 “남쪽 사람은 간략하여 그 영화(英華)를 얻고 북학(北學)은 황잡(荒雜)하여 그 지엽(枝葉)을 궁구하였다.[南人約簡 得其英華 北學深蕪 窮其枝葉]”라고 하였다, 곧 하남(河南)과 하북(河北)의 유학자(儒學者)가 경서(經書)의 장구(章句)를 함에 있어서 하남(河南)의 유학자는 간략하게 해서 그 정화(精華)를 얻었고, 하북(河北)의 유학자는 거칠어서 그 지(枝葉)엽을 궁구하였다는 뜻이다.

남인역록[南人轣轆]  육운(陸雲)의 소림(笑林)에 “한(漢) 나라 사람이 오(吳) 나라에 가니 오 나라 사람이 죽순나물을 차려 주었다. 그래서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더니 대[竹]라고 하였다. 집에 돌아와서 상책(床簀: 살평상의 대, 침상에 까는 대자리)을 아무리 삶아도 익지 않으니 그가 아내에게 ‘오 나라 놈이 나를 이렇게 감쪽같이 속였다.’라고 하였다.[漢人有適吳, 吳人設筍, 問是何物? 語曰竹也! 歸煮其床簀而不熟, 乃謂其妻曰: 吳人轣轆, 欺我如此!]”라는 고사가 있다. <筍譜下紺珠集十一> 역록(轣轆)은 은어(隱語)인데 본디 수레의 궤도(軌道)를 역록이라 이르므로 빌려서 궤도(詭道)로 쓴 것이다.

남자[南子]  위 영공(衛靈公)의 부인. 송(宋)나라 출신. 성은 자(子)다. 남자가 송자조(宋子朝)와 간통하니, 태자 괴외(蒯聵)가 그것을 알고 미워하였다. 이에 남자가 괴외를 영공에게 모함하여 죽이게 하니, 괴외는 송(宋) 나라로 도망쳤다. 괴외는 나중에 귀국하여 즉위한 뒤 마침내 남자를 죽였다.

남자[南子]  위 영공(衛靈公)의 부인이다. 남자(南子)가 그 남편 영공(靈公)과 밤에 함께 앉았는데 수레 소리가 대궐 앞에 이르러 그쳤다가 대궐을 지나서 다시 났다. 그것을 들은 영공이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아오?”라고 하니 남자가 “거백옥입니다.”라고 하였다. 영공이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남자가 “저는 들으니, 예(禮)에 ‘수레를 타고 가다가 대궐 앞에서는 내린다.’고 했습니다. …… 거백옥은 위 나라의 어진 대부(大夫)이기 때문에 압니다.”라고 하였다. 영공이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과연 거백옥이었다고 한다. <小學 稽古>

남자[南子]  위 영공(衛靈公)의 부인(夫人)으로 미모가 있었으나, 미남자 송조(宋朝)와 염문을 뿌리는 등 음행(淫行)이 있었다. 그녀가 공자에게 만나기를 청하였을 때, 공자는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만났다.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공자께서 남자를 만나시자,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이에 공자께서 맹세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만일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한다면 하늘이 버리실 것이다. 하늘이 버리실 것이다.’[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 曰予所否者 天厭之天厭之]”라고 보인다.

남자[南子]  위 영공(衛靈公)의 부인이다. 공자의 명성을 듣고 만나기를 청하였는데, 그녀가 음란한 여인이었으므로 공자가 청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 나라에 벼슬하면 그 임금의 부인을 뵙는 예(禮)에 따라 부득이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영공은 남자와 한 수레를 타고 대로를 지나갔으며, 뒤 따르는 수레에 공자를 타게 하였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論語 公冶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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