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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렵[藍田獵]~남전로[灆田路]~남전산[藍田山]~남전생옥[藍田生玉]

남전렵[藍田獵]  전한(前漢)의 명장 이광(李廣)이 흉노(匈奴)와의 싸움에서 크게 패하여 남전(藍田)의 남산에서 몇 년 동안 사냥을 하며 살았다. 이때 야간에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검문을 받았는데, 함께 따라갔던 사람이 “전임 이 장군이시다.”라고 설명하자, 현위(縣尉)가 “현임 장군도 야간 통행을 못하는데, 하물며 전임 장군이겠는가.”라고 하면서 패릉정(覇陵亭) 아래에 억류시켰다. <史記 卷109 李廣列傳>

남전로[灆田路]  남전은 장안(長安)에서 동남쪽으로 90리 지점에 있는 지명이다. 당 나라 헌종(憲宗) 원화(元和) 5년(810)에 원진(元稹)이 감찰어사(監察御使)로 있다가 강릉부(江陵府)의 사조연(士曹掾)이라는 하급관리로 좌천되어 갔다. 이때 백거이(白居易)가 ‘처음 원구와 작별한 뒤에 갑자기 꿈속에서 보았는데, 깨고 나자 그의 편지가 마침 왔으며 겸하여 동화시를 부쳐오니 서글픈 감회를 이기지 못해[初與元九別後 忽夢見之 乃寤而書適至 兼寄桐花詩 悵然感懷]’라는 제목으로 장편의 시를 지어 보냈는데, 여기에 “아득한 남전의 길 한번 간 뒤로 소식이 없네.[悠悠灆田路 自去無消息]”라고 하였다. 이후로 남전의 길은 유배 가는 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원구는 원씨 집안의 아홉 번째 남자란 뜻으로, 곧 원진을 가리킨다.

남전북답[南田北畓]  밭은 남쪽에 논은 북쪽에 있다는 뜻으로 가진 논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남전산[藍田山]  남전산은 장안(長安) 동남쪽 30리 지점의 남전현(藍田縣)에 있는데, 이 산에서 옥이 생산되므로 옥산(玉山)이라고도 부른다. 도가(道家)에서는 주머니 속에 옥가루를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먹는 양생법이 있는데, 두보(杜甫)의 거의행(去矣行) 시에 “주머니 속 옥 먹는 법 시험해 보지 못했으니, 내일 아침에는 남전산에나 들어가 볼까.[未試囊中餐玉法 明朝且入藍田山]”라는 말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3>

남전생옥[藍田生玉]  남전(藍田)은 중국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 동쪽에 있는 산인데, 예로부터 미옥(美玉)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전하여 명망 있는 가문에 훌륭한 자제(子弟)가 나오는 것을 비유한다. 삼국(三國) 시대 오(吳)의 손권(孫權)이 제갈각(諸葛恪)의 뛰어난 재주를 기특하게 여겨 그의 아버지인 제갈근(諸葛瑾)에게 말하기를 “남전이 옥을 낳는다더니, 참으로 빈말이 아니로다.[藍田生玉 眞不虛也]”라고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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