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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南詔]~남조무인[南朝無人]~남조문신공[南朝文信公]~남조서[南曹敍]


남조[南朝]  일반적으로 중국 남방에 위치했던 나라인 남송(南宋)과 남명(南明)을 가리킨다.

남조[南朝]  남쪽 조정이란 뜻으로 명말청초 혼란기에 점차 쇠퇴하여 남쪽으로 쫓겨나 있던 명조(明朝), 즉 명(明) 나라 의종(毅宗)이 이자성(李自成)에게 망한 뒤에 명 왕실의 일족이 세운 조정을 이른다. 1644년 의종이 자결하자 복왕(福王) 주유숭(朱由崧)이 남경(南京)에서 즉위하였으며, 다음해 복왕이 청(淸) 나라 군사에게 사로잡히자 당왕(唐王) 주율건(朱聿鍵)이 복주(福州)에서 황제를 칭하였고, 당왕이 또 청군에게 붙잡히자 주계왕(朱桂王) 유랑(由榔)이 조경(肇慶)에서 황제라 칭하였으나 또다시 청군에게 쫓겨 평락(平樂)으로 달아나 16년간 명맥을 유지하였다.

남조[南詔]  당(唐)나라 때 오만(烏蠻)이 주체가 되어 건립한 국가로, 운남(雲南)・사천(四川)・귀주(貴州) 일대에 있었다. 현재의 운림성(雲林省) 지역이다.

남조[南祖]  불교 선가(禪家)에 있어서의 남종(南宗)의 조(祖)이다. 즉 혜능선사(慧能禪師)를 말한 것으로 신수(神秀)를 북종(北宗)이라 한 데 대한 말이다. <宋高僧傳 八>

남조[南曹]  예조(禮曹)의 별칭이다.

남조무인[南朝無人]  남조(南朝)는 임안으로 도읍을 옮긴 남송(南宋)의 조정을 이른다. 금(金)나라가 송(宋)나라를 침략할 때 송나라가 황하를 지키지 않고 물러나서 안쪽에서 수비를 하였는데 금나라 군사가 황하를 건너면서 웃으며 말하기를 “남조(南朝)에는 사람이 없다고 할 만하다. 만약 일이천 명으로 황하를 지켰다면 우리가 어찌 건널 수 있었겠는가.[南朝可謂無人, 若以一二千人守河, 我豈得渡.]”라고 한 표현을 빌려온 것이다. <宋史紀事本末 卷13 金人南侵>

남조문신공[南朝文信公]  남조(南朝)는 남송(南宋)을 가리키며, 문신공(文信公)은 남송의 충신인 문천상(文天祥)의 시호이다. 자는 송서(宋瑞), 호는 문산(文山)이며 길수(吉水) 사람으로 남송의 승상이 되어 나라를 부흥시키려 온 힘을 다하였으나, 끝내 나라는 원(元)나라에 패망하고 자신은 사로잡혔다. 원나라 세조(世祖)의 끊임없는 회유가 있었으나 끝까지 굴하지 않고,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호연한 정기를 천하에 떨치며 당당하게 사형을 당하였다.

남조사[南朝事]  남북조시대 중국 남방에 웅거하였던 송(宋), 제(齊), 양(梁), 진(陳) 등을 남조(南朝)라 칭하는데, 이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뜻한다.

남조서[南曹敍]  남조(南曹)는 당(唐)나라 이부(吏部)에 속한 벼슬이다. 한유(韓愈)의 시 ‘영 스님을 보내며[送靈師]’에 남조에서 벼슬하는 사람이 써 준 서(敍)를 받고 “손에 남조의 서를 가져와 보이니, 푸른 옥을 새긴 것처럼 글자가 중하여라.[手持南曹敍 字重靑玉鐫]”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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