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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樓賦등루부 / 성루에 올라 / 王粲왕찬


이 누각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며  / 登茲樓以四望兮[등자루이사망혜]

한가한 날을 틈타 시름을 씻노라네  / 聊暇日以銷憂[요가일이소우]

이 누각 있는 곳 경관을 둘러보니  / 覽斯宇之所處兮[남사우지소처혜]

참으로 활짝 트여 견줄 데가 드무네  / 實顯敞而寡仇[실현창이과구]

끼고도는 맑은 장수 강어귀로 통하고  / 挾淸漳之通浦兮[협청장지통포혜]

저수 굽이에 치우친 모래톱이 기다랗네  / 倚曲沮之長洲[의곡저지장주]

물가 둔덕 뒤로 넓은 언덕 펼쳐지고  / 背墳衍之廣陸兮[배분연지광륙혜]

앞으로는 저습지가 젖어 흐르네  / 臨皋隰之沃流[임고습지옥류]

북쪽으로는 도주공의 목장과 닿아있고  / 北彌陶牧[북미도목]

서쪽으로는 초소왕의 능묘에 접하였네  / 西接昭丘[서접소구]

꽃과 열매들이 들녘을 덮었고  / 華實蔽野[화실폐야]

밭에는 곡식들이 풍성하네  / 黍稷盈疇[서직영주]

실로 아름다우나 내 고향 아니니  / 雖信美而非吾土兮[수신미이비오토혜]

어찌 잠시인들 더 머물 수 있으랴  / 曾何足以少留[증하족이소류]

혼탁한 난세 만나 여기저기 떠돌며  / 遭紛濁而遷逝兮[조분탁이천서혜]

기나긴 12년 지나 지금에 이르렀네  / 漫踰紀以迄今[만유기이흘금]

고향 그리워 돌아갈 마음 간절하니  / 情眷眷而懷歸兮[정권권이회귀혜]

누군들 이 시름을 견딜 수 있으랴  / 孰憂思之可任[숙우사지가임]

난간에 의지하여 아득히 바라보며  / 憑軒檻以遙望兮[빙헌함이요망혜]

북풍을 마주하여 앞섶을 활짝 여네  / 向北風而開襟[향북풍이개금]

평원 저 멀리 눈이 닿는 끝에는  / 平原遠而極目兮[평원원이극목혜]

형산의 높은 봉우리가 가로막고  / 蔽荊山之高岑[폐형산지고잠]

길은 구불구불 아득히 이어져도  / 路逶迤而修迥兮[노위이이수형혜]

넘실거리는 물이 건너기에 깊으니  / 川旣漾而濟深[천기양이제심]

오래도록 고향 길 막힘이 슬퍼  / 悲舊鄕之壅隔兮[비구향지옹격혜]

눈물이 주루룩 흘러 금할 수 없네  / 涕橫墜而弗禁[체횡추이불금]

옛날 공자께서 진나라에 계실 때  / 昔尼父之在陳兮[석니부지재진혜]

돌아가자 돌아가자 탄식하였으며  / 有歸歟之歎音[유귀여지탄음]

종의는 갇혀서도 초의 음악 연주했고  / 鍾儀幽而楚奏兮[종의유이초주혜]

장석은 출세해서도 월어로 신음 했네  / 莊舃顯而越吟[장석현이월음]

사람 마음은 같아 고향땅을 그리나니  / 人情同於懷土兮[인정동어회토혜]

궁하거나 달하거나 그 마음이 다르랴  / 豈窮達而異心[기궁달이이심]

생각거니 세월만 덧없이 빨리 가고  / 惟日月之逾邁兮[유일월지유매혜]

황하 맑기 기다려도 끝이 없구나  / 俟河淸其未極[사하청기미극]

바라건대 왕도로써 단번에 평정되면  / 冀王道之一平兮[기왕도지일평혜]

제왕의 큰 길 빌려 재주 맘껏 펼치련만  / 假高衢而騁力[가고구이빙력]

박처럼 매달려 있는 부류 될까 두렵고  / 懼匏瓜之徒懸兮[구포과지도현혜]

우물 깨끗이 치워도 안 마실까 두렵네  / 畏井渫之莫食[외정설지막식]

느긋이 걸으며 한가로이 배회하니  / 步棲遲以徙倚兮[보서지이사의혜]

밝은 해가 돌연 숨으려고 하고  / 白日忽其將匿[백일홀기장닉]

소슬바람 한꺼번에 일어나서  / 風蕭瑟而並興兮[풍소슬이병흥혜]

하늘도 비통한 듯 빛을 잃어 버렸네  / 天慘慘而無色[천참참이무색]

짐승은 정신없이 무리를 찾고  / 獸狂顧以求群兮[수광고이구군혜]

새들은 서로 울며 날개 퍼덕이네  / 鳥相鳴而擧翼[조상명이거익]

벌판에는 고요하니 사람이 없고  / 原野闃其無人兮[원야격기무인혜]

출정하는 사람만 감에 쉬지 못하네  / 征夫行而未息[정부행이미식]

마음 애통하여 감정이 발동하니  / 心悽愴以感發兮[심처창이감발혜]

생각도 슬퍼져서 가슴이 아파오네  / 意忉怛而憯惻[의도달이참측]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려니  / 循堦除而下降兮[순계제이하강혜]

원통함이 가슴에 치밀어 올라  / 氣交憤於胸臆[기교분어흉억]

깊은 밤 되어도 잠 못 이루고  / 夜參半而不寐兮[야삼반이불매혜]

슬픔에 배회하다 누워 뒤척이네  / 悵盤桓以反側[창반환이반측]

<登樓賦등루부 / 성루에 올라 / 王粲왕찬>


  • 왕찬[王粲]  후한(後漢) 말기와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문인으로 자가 중선(仲宣)이다. 산양(山陽) 고평(高平) 사람이다. 박람다식(博覽多識)하고 문사(文詞)가 넉넉하였다. 후한(後漢) 헌제(獻帝)가 동탁(董卓)의 강요에 못 이겨 장안(長安)으로 천도하였을 때 배종했고, 거기서 당대의 학자 채옹(蔡邕)의 눈에 들었다. 채옹(蔡邕)은 그의 재주를 훌륭하게 여겨 그가 올 때마다 신을 거꾸로 신고 나와 마중하였다 한다. 17세 때에 사도(司徒)의 임명을 사양하였다. 얼마 후 동탁이 암살되어 장안이 혼란에 빠지자 형주(荊州)로 몸을 피해 유표(劉表)를 의탁해 15년을 지냈다. 유표가 죽자 유표의 아들 유종(劉琮)을 설득하여 조조(曹操)에게 귀순시키고 자신도 승상연(丞相椽)이 되고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후에 조조가 위왕이 되자 시중(侍中)으로서 제도개혁에 진력하는 한편, 조씨 일족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집단 안에서 문인으로서도 활약하였다. 조식(曹植)과 더불어 조왕(曹王)으로 불렸다.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이자 대표적 시인으로 가장 표현력이 풍부하고 유려하면서도 애수에 찬 시를 남겼는데 등루부(登樓賦), 종군시(從軍詩) 5수, 칠애시(七哀詩) 3수는 유명하다. 문집으로 왕시중집(王侍中集)이 있다. 왕찬이 일찍이 유표(劉表)에게 가서 의지해 있을 때 유표는 그의 외모가 못생기고 몸이 약하며 예법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여 별로 중시하지 않았다. 왕찬은 뜻을 얻지 못하고 고향이 그리워지자 당양성루(當陽城樓: 혹은 강릉성루江陵城樓)에 올라가 시사를 한탄하고 고향을 생각하며 진퇴위구(進退危懼)의 정을 서술하여 등루부(登樓賦)를 지은 고사가 있다. <文選 卷11 登樓賦><三國志 卷21 魏書 王粲傳>
  • 가일[暇日]  여가가 있는 날. 한산한 날. 한가한 날.
  • 현창[顯敞]  지세가 널찍하다.
  • 분연[墳衍]  물가의 평지에 둔덕이 있는 지대. 평지와 물가에 비옥하고 평평한 넓은 토지. 물가의 높은 곳을 분(墳)이라 하고, 낮고 평평한 곳을 연(衍)이라 한다. 오토(五土)의 하나이다.
  • 오토[五土]  오토(五土)는 다섯 가지 토지, 곧 산림(山林)・천택(川澤)・구릉(丘陵)・분연(墳衍 물가의 평지)・원습(原隰 높은 벌판과 낮은 진펄)을 가리킨다. 춘분과 추분을 지난 무자(戊子) 일을 사일(社日)이라고 하며, 이날 여기에 제사를 지낸다. <周禮 地官 大司徒>
  • 오토[五土]  산림(山林), 천택(川澤), 구릉(丘陵), 하천지(河川地), 저습지(低濕地)의 다섯 곳을 관장하는 신을 말한다. <漢語大詞典>
  • 도목[陶牧]  도목(陶牧)은 도주공(陶朱公)의 장지(葬地)를 이른다. 도주공은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범려(范蠡)를 이른다. 월왕(越王) 구천(勾踐)을 도와 오(吳)나라를 멸망시킨 후에 관직을 버리고 도(陶: 지금의 산동山東 조현曹縣) 땅으로 가서 장사를 하여 거만금을 모으고 자칭 도주공이라 하였다. 목(牧)은 교외(郊外)이다. 호북(湖北) 강릉(江陵) 서쪽에 도주공의 묘가 있었기 때문에 도목(陶牧)이라고 한 것이다. 도주공이 목축(牧畜)을 하였다는 설도 있어 도목(陶牧)을 도주공의 목장(牧場)으로 보기도 한다.
  • 도주공[陶朱公]  도주공은 춘추(春秋) 시대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모신(謀臣)인 범려(范蠡)의 별칭이다. 월왕이 오왕(吳王) 부차(夫差)로부터 회계(會稽)에서 치욕을 당한 후, 범려가 미인 서시(西施)를 오왕에게 바쳐 미인계로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는 월왕과는 더불어 안락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하루아침에 벼슬을 버리고 다시 서시(西施)를 데리고 서호(西湖)에 배를 띄워 떠나 버렸는데, 제(齊)나라에 들어가 치이자피(鴟夷子皮)로 성명(姓名)을 바꾸고 무역과 농목(農牧)에 종사하여 부자가 되었다. 제왕(齊王)이 그를 승상으로 삼자, 범려는 승상인(丞相印)을 돌려주고 재물을 다 흩어 친지와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어진 일을 하고서, 도(陶)로 가서 주공(朱公)이라 칭하며 치산(治産)을 잘하여 거부(巨富)를 이루었다. 노(魯)나라의 부인(富人) 의돈(猗頓)이 일찍이 매우 가난했을 때, 도 주공이 거부란 말을 듣고 그에게 찾아가서 부자가 되는 지혜를 묻자, 도주공이 말하기를 “그대가 속히 부자가 되고 싶으면 소, 말, 돼지, 양, 당나귀의 다섯 가지 암컷[五牸]을 길러야 한다.”고 하므로, 의돈이 그대로 시행하여 그 역시 거부를 이루었다고 한다. <史記 卷41 越王句踐世家><史記 卷129 貨殖列傳>
  • 서직[黍稷]  찰기장과 메기장으로, 제물의 대명사이다. 곡물(穀物)을 가리키기도 한다. 직(稷)과 서(黍)는 1부류이면서 2종자이다. 차진 것은 서(黍)이고 차지지 않은 것은 직(稷)이다. <本草綱目 穀2 稷>
  • 소구[昭邱]  초소왕(楚昭王)의 능으로 당양(當陽)의 교외에 있다. 초소왕의 성은 미(羋)이고 이름은 웅진(熊珍)이다. 초평왕(楚平王)의 아들이다. 재위 시 오나라와의 빈번히 발생한 전쟁에서 계속 패전을 당하다가 기원전 506년 당(唐)과 채(蔡) 두 나라와 연합군을 결성한 오왕 합려(闔閭)의 대대적인 침략을 받아 초나라의 수도 영도(郢都)가 함락당하고 초소왕은 수(隨)나라로 달아나 몸을 의탁했다. 그 다음 해에 신포서(申包舒)가 진(秦)나라에 사자로 가서 얻은 진나라 구원군의 도움으로 오군을 물리치고 영도를 탈환했다. 멸망의 위기에서 나라를 다시 찾은 초소왕은 국정을 쇄신하여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기원전 489년, 오왕 부차가 초나라의 동맹국인 진(陳)나라를 침략하자 구원군을 이끌고 친히 원정에 나섰다가 행군도중 군중에서 죽었다.
  • 권권[眷眷]  권권(睠睠). 그리워하여 잊지 못함. 가엽게 여기어 늘 마음속으로 잊지 않는 모양.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 돌아보는 모양.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명(小明)에 “그곳에 있는 사람 생각하느라, 자꾸만 마음 쓰여 돌아다보네[念彼共人 睠睠懷顧]”라고 하였다.
  • 하족[何足]  어찌 ~할 만하겠는가? ~하지 않다. ~할 가치[필요]가 없다. ~할 것이 못된다. 어찌 할만한 일일까.
  • 우사[憂思]  우려(하다). 우수가 깃든 마음. 근심(하다).우수의 정. 근심과 걱정스런 생각임.
  • 헌함[軒檻]  누각(樓閣) 또는 대청(大廳) 기둥 밖으로 돌아가며 놓은 난간이 있는 좁은 마루나 방.
  • 위이[逶迤]  에두른 길이 구불구불함. 길이나 산천 등이 구불구불 끊이지 않고 멀리 이어진 모양. 위이(委蛇). 두보(杜甫)의 시 구일기잠삼(九日寄岑參)에 “진창길에서 벼슬하는 군자는 수레로 굳이 구불구불 갈 수 있지만, 벼슬 없는 소인은 빨리 달려가기 어렵다.[君子强逶迤 小人困馳驟]”라고 하였다.
  • 귀여지탄[歸歟之歎]  공자(孔子)가 일찍이 진(陳)에 있을 때에 이르기를 “돌아가련다, 돌아가련다. 우리 당의 소자들이 뜻만 크고 일에는 홀략하여 찬란하게 문채만 이루었을 뿐이요, 스스로 재단할 줄을 모르도다.[歸歟歸歟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라고 탄식하였다. 이는 곧 공자가 천하를 주유했으나 도를 끝내 행할 수 없음을 알고는 고국(故國)인 노(魯)나라로 돌아가서 후학들을 성취시켜 후세에나 도를 전하고자 하는 뜻에서 한 탄식이었다. <論語 公冶長>
  • 종의[鍾儀]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악관(樂官)인 종의(鍾儀)가 일찍이 정인(鄭人)에 의해 진(晉)나라에 잡혀가서 갇혀 있을 때, 진 혜공(晉惠公)이 군부(軍府)를 시찰하다가 종의가 묶여 있는 것을 보고는 “남쪽 나라 관을 쓰고 잡혀 있는 저 자는 누구인가?[南冠而縶者誰也]”라고 묻자, 유사(有司)가 “정나라 사람이 바친 초나라 포로입니다.[鄭人所獻楚囚也]”라고 대답하니, 혜공이 그의 결박을 풀어 주게 하고 대화를 나눈 뒤에 그의 집안이 악관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에게 거문고를 주며 음악을 연주하게 하자 초나라 음악을 연주하였으며[使與之琴 操南音], 혜공이 범문자(范文子)의 말에 따라 그를 예우하여 고국으로 돌려보내 두 나라의 화목을 도모했다는 기사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9년 조에 나온다.
  • 장석월음[莊舃越吟]  고향을 그리워함을 뜻한다. 전국 시대 월(越)나라 사람 장석(莊舃)이 초(楚)나라에 와서 벼슬하여 집규(執圭)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가 병에 걸렸는데, 초왕(楚王)이 “장석은 본래 월나라의 비루한 사람이었다. 지금 초나라에서 집규를 맡아 부귀하지만 또한 월나라를 생각하지 않겠는가?”라 하니, 중사(中謝)가 “보통 사람이 고향을 생각할 때는 병이 들었을 때입니다. 그가 월나라를 생각하면 월나라 노래를 부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초나라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초왕이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더니 과연 장석이 월나라 노래를 불렀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卷70 陳軫列傳>
  • 장석[莊舃]  장석(莊舃)은 춘추전국 시대 월(越)나라 사람이다. 장석이 초(楚)나라에 가서 벼슬하여 현달(顯達)하였는데 한번은 병이 나서 누워 있었다. 초왕(楚王)이 “장석은 월나라 사람인데, 지금도 월나라를 그리워하는가?”라고 하니, 중사(中使)가 “대개 사람이 병이 들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법입니다. 장석이 월나라를 그리워한다면 월나라의 소리로 신음할 것이고, 월나라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초나라의 소리로 신음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초왕이 사람을 시켜서 알아보니, 장석이 과연 월나라의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고 한다. <史記 卷70 張儀列傳>
  • 유매[逾邁]  빨리 지나다. 멀리 떠나가다. 성큼 나가다. 서경(書經) 진서(秦誓)에 “내 마음의 근심은, 세월은 빨리 흘러가니 다시 올 것 같지 않음이라.[我心之憂 日月逾邁 若弗云來]”라고 하였다.
  • 백년하청[百年河淸]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黃河)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오랫동안 기다려도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 아무리 세월이 가도 일을 해결할 희망이 없음. 아무리 기다려도 가망 없어, 사태가 바로 잡히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 8년조(襄公八年條)에 “초(楚)나라 자낭(子囊)이 정(鄭)나라를 토벌하였으니, 이는 정(鄭)나라가 채(蔡)나라를 침공(侵攻)하였기 때문에 토벌(討伐)한 것이었다. 자사(子駟)·자국(子國)·자이(子耳)는 초(楚)나라에 복종(服從)하고자 하고, 자공(子孔)·자교(子蟜)·자전(子展)은 진(晉)나라의 구원(救援)을 기다리고자 하였다. 이때 자사(子駟)가 말하기를 ‘주(周)나라 시(詩)에 「하수(河水)가 맑아지길 기다리려면 사람의 수명(壽命)이 얼마가 되어야 하겠는가? 점(占)을 치고 또 많은 계책(計策)을 물으면 서로의 주장(主張)을 다투어 스스로를 얽어매는 그물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周詩有之曰 俟河之淸 人壽幾何 兆云詢多 職競作羅]. 계책(計策)을 내는 사람이 많아 어기는 백성이 많으면 일은 더욱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한 데서 보이는데, 즉 믿을 수 없는 진나라의 구원병을 기다린다는 것은 황하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는 이야기와 같은 뜻으로, 결국 자사의 주장이 수용되어 정나라는 초나라에 항복하여 화친을 맺고 위기를 현실적으로 모면하였다.
  • 포과[匏瓜]  진(晉)나라 조씨(趙氏)의 중모재(中牟宰)인 필힐(佛肹)이 배반을 하고는 공자를 불렀을 때 공자가 가려고 하니, 자로(子路)가 필힐은 불선(不善)한 사람이므로 가서는 안 된다고 하자, 공자가 “내가 어찌 박이더냐. 어떻게 한 군데 매달린 채 먹지도 못한단 말이냐.[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라고 반문한 고사가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나온다.
  • 정설[井渫]  우물이 이미 준설(浚渫)됨. 스스로 몸가짐을 깨끗이 함의 비유. 설(渫)은 더럽고 흐린 것을 쳐버려 깨끗이 함이다. 주역(周易) 정괘(井卦) 구삼(九三)에 “우물을 깨끗이 쳤는데도 먹지를 않으니 내 마음이 슬프다. 임금이 밝아서 길어다 먹기만 하면 모두 복을 받으리라.[井渫不食 爲我心惻 可用汲 王明 竝受其福]”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 정설불식[井渫不食]  우물이 깨끗한데도 마시지 않는다는 뜻으로 재능있는 사람이 세상에 쓰이지 못함을 이른다. 주역(周易) 정괘(井卦) 구삼(九三)에 “우물을 치고도 물을 먹지 않아 내 마음에 슬픔이 되었다. 길어 올릴 수 있다. 왕이 밝으면 그 복을 함께 받는다.[井渫不食 爲我心惻 可用汲 王明 幷受其福]”고 하였고, 그 상전(象傳)에 “왕이 밝기를 바라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求王明 受福也]”라고 하였다. 구삼효(九三爻)는 정괘의 하괘(下卦)의 맨 위에 있어서 쓰이지 못하니 마치 재능을 갖춘 인재가 발탁되지 못하고 아래에 있는 것과 같다. 왕이 명철하여 현능한 인재가 등용되면, 인재는 그 도를 시행하게 되고 왕은 그 공적을 누리게 되며 백성은 그 은택을 입게 되니, 위아래가 모두 그 복을 받는다.
  • 서지[棲遲]  하는 일 없이 느긋하게 돌아다니며 놂. 천천히 돌아다니며 마음껏 놂. 벼슬을 마다하고 세상을 피하여 시골에서 삶. 돌아다니며 쉬거나 한가로이 지내는 것. 은거하여 편안하게 노니는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 진풍(陳風) 형문(衡門)에 “형문(衡門: 두 기둥에다 한 개의 횡목을 질러 만든 허술한 대문)의 아래여 쉬고 놀 수 있도다. 샘물이 졸졸 흐름이여 굶주림을 즐길 수 있도다.[衡門之下, 可以棲遲. 泌之洋洋, 可以樂飢.]”라고 하여 누추한 곳이라도 은자가 지내기엔 족한 곳이라는 구절이 있고, 유장경(劉長卿)의 시 장사과가의댁(長沙過賈誼宅)에 “이곳에서 보낸 귀양살이 삼 년이라도, 가의는 만고에 남은 것은 가의의 슬픔이네.[三年謫宦此棲遲 萬古惟留楚客悲]”라고 하였다.
  • 사의[徙倚]  배회하다. 한가롭게 슬슬 걷다. 한가롭게 이리저리 거닐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함. 머뭇거리다. 우물쭈물하다.
  • 참참[慘慘]  비통한 모양. 걱정하는 모양. 암담한 모양. 초췌한 모양. 시름하는 마음이 비참함. 슬프다. 음산하고 소슬하다. 의기소침하다. 어두컴컴하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북산(北山)에 “혹은 편안하여 고함쳐 호소할 줄 모르는데 혹은 서글피 수고한다.[或不知叫號 或慘慘劬勞]”고 하였다.
  • 광고[狂顧]  좌우를 서둘러 살피는 모습이다.
  • 처창[悽愴]  처참하다. 비통하다. 몹시 슬프다. 돌아가신 부조(父祖)에 대해 자손들이 숙연히 추모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정신이 송연(悚然)해짐을 말한다. 예기(禮記) 제의(祭義)에 “신의 기는 하늘로 올라가서 영험이 밝게 드러나고 그 향기가 사람을 엄습하여 정신이 송연해지나니, 이것이 바로 온갖 물건의 정이요 신의 드러남이다.[其氣發揚于上 爲昭明 焄蒿悽愴 此百物之精也 神之著也]”라고 하였고,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거든 군자가 그것을 밟아보고 반드시 슬픈 마음이 생기나니, 이는 날이 추워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또 봄에 비와 이슬이 내려 땅이 축축해지거든 군자가 그것을 밟아보고 반드시 섬뜩하게 두려운 마음이 생겨 마치 죽은 부모를 곧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된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 春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怵惕之心, 如將見之.]”라고 하였다.
  • 원야[原野]  벌판. 개척하지 아니하여 인가가 없는 벌판과 들.
  • 감발[感發]  감동하여 분발함.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 크게 느낀 바가 있어 마음과 힘을 떨쳐 일어남.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움직이다.
  • 도달[忉怛]  근심하고 슬퍼하다. 한(漢)나라 왕일(王逸)의 구사(九思) 원상(怨上)에 “우두커니 서서 슬퍼하노니, 마음에 번민이 차 찢어질 듯하여라.[佇立兮忉怛 心結愲兮折摧]”라고 하였다.
  • 참측[憯惻]  마음이 상하고 아프다.
  • 참측[慘惻]  몹시 슬퍼함. 또는 그런 모양.
  • 흉억[胸臆]  가슴 속. 가슴속의 생각. 마음에 품은 생각. 감정. 느낌. 속마음. 내심.
  • 참반[參半]  절반씩 섞음. 각각 반분(半分) 가량 섞는 것. 각각 반분(半分) 가량 섞는 것. 어림쳐서 반 쯤.
  • 반환[盤桓]  머뭇거리며 그 자리를 멀리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일. 어떻게 할지 결정을 못 내리고 우물쭈물하는 일. 배회(徘徊)하며 떠나가지 못하다. 머물다. 함께 있다. 구부러지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햇볕이 뉘엿뉘엿 장차 서산에 지려 하는데,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반환하네.[景翳翳以將入 撫孤松而盤桓]”라고 하였다.
  • 반측[反側]  마음이 불안하여 몸을 뒤척이는 것을 가리킨다. 두보(杜甫)의 시 팽아행(彭衙行)에 “안고 있던 아이의 입을 막았더니, 아이는 더 큰 소리로 울어 젖히네.[懷中掩其口 反側聲愈嗔]”라고 하였다.
  • 반측[反側]  불안해하는 모양. 반측은 불안하여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몸을 뒤척임을 이른다. 후한(後漢)을 일으킨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왕랑(王郞)을 토벌하였는데, 당시 광무제의 부하 중에는 왕랑과 서신을 왕래하여 밀통한 자가 상당수 있었다. 광무제가 마침내 왕랑을 토벌하고 그 서신을 입수하니, 여기에 연관된 자들은 불안에 떨었다. 광무제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그 서신을 모두 보지 않고 불태우며 말하기를 “반측하는 자들을 스스로 편안하게 한다.[令反側子自安]”고 하였다. <後漢書 卷一上 光武帝紀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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