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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여수[男唱女隨]~남창위[南昌尉]~남창정장[南昌亭長]

남창[南昌]  중국 강서성(江西省)의 지명이다. 남창에는 등왕각(滕王閣)이 있는데 이 누각은 처음에 당나라 고종(高宗)의 아들 이원영(李元嬰)이 강주자사(江州刺史)로 있으면서 세운 것이다. 이원영이 당시에 등왕(滕王)에 봉해진 까닭으로 등왕각이라고 일컬었다.

남창[南昌]  후한(後漢) 때의 남창 태수(南昌太守) 진번(陳蕃)을 가리킨다. 진번은 남창 태수로 있으면서 빈객(賓客)을 접견하지 않았는데, 오직 서치(徐穉)가 찾아오면 특별히 의자 하나를 마련했다가 앉게 하고 그가 떠나면 의자를 도로 벽에 매달아 두었다. <後漢書 卷53 徐穉列傳>

남창여수[男唱女隨]  남자의 주장에 여자가 따름. 남자가 앞에 나서서 부르고 여자는 그저 따라만 한다는 말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

남창위[南昌尉]  남창은 오늘날 중국의 강서성(江西省)에 있는 지명인데, 한(漢) 나라 때 구강(九江) 수춘(壽春) 사람인 매복(梅福)이 남창위를 지냈다 하여 그를 가리킨다. 왕망(王莽)이 권력을 독단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나중에는 성명을 고치고 오현(吳縣) 저자의 문지기가 되었다 한다. <漢書 卷六十七 梅福傳>

남창정장[南昌亭長]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은 회음현(淮陰縣) 사람이로, 젊었을 적에 가난한 데다 품행이 단정하지 않아, 추천을 받아[推擇]도 관리가 되지 못하였다. 또 장사로 생계를 꾸릴 수도 없어서 항상 남을 따라다니며 음식을 얻어먹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싫어하였다. 일찍이 하향현(下鄉縣) 남창정장(南昌亭長)을 자주 따라가서 밥을 얻어먹었는데, 몇 개월이 지나자 정장의 아내가 그를 미워하여 새벽밥을 지어 이부자리에서 밥을 먹었다[蓐食]. 한신이 이를 알고 마침내 관계를 끊고 그곳을 떠났다. 또, 한신이 성 아래서 낚시를 하는데, 빨래하는 어떤 아낙이 굶주린 한신에게 밥을 먹여주었다. 한신이 훗날 보답을 하겠다고 하자, 그 아낙은 “대장부가 제힘으로 밥을 먹지 못하기에, 내가 왕손(王孫)을 가엾게 여겨 밥을 준 것이지 어찌 보답을 바라겠소.”라고 하였다. 나중에 한신은 유방(劉邦)의 개국을 도와 공신이 되었고, 한나라 5년에 초왕(楚王)이 되어 하비(下邳)에 도읍을 정하였다. 초왕(楚王)에 오른 한신은 옛날 밥을 먹여주었던 빨래하던 아낙을 불러 천금(千金)을 상으로 주고, 남창정장에게도 백 금(百金)을 주면서 “그대는 소인이다. 은덕을 베풀다가 중도에 그만두었다.”라고 하였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史略 卷2 西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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