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남팔남아[南八男兒]~남팔불굴[南八不屈]~남팽[南烹]


남팔[南八]  당(唐)나라 남제운(南霽雲)을 가리킨다. 그가 남씨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안록산(安祿山)의 난에 끝까지 수양(睢陽)을 지키다가 장렬하게 죽은 자이다. 남팔이라 한 것은 형제 중 배항이 여덟 번째여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한유(韓愈)의 장중승전후서(張中丞傳後叙)에서 장순(張巡)이 적에게 죽을 때 남제운을 부르며 “남팔아, 남아는 죽을지언정 불의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한다.

남팔남아[南八男兒]  남팔(南八)은 안녹산의 난 때 수양성(睢陽城)에서 순절한 남제운(南霽雲)으로, 남씨 집안의 형제 중 여덟 번째여서 이렇게 칭한 것이다. 남제운은 장순(張巡)의 부하 장수로 수양성을 지키다가 함께 순절하였는데, 수양성이 함락될 때 적이 투항하라고 위협하자, 장순이 남제운에게 “남팔아, 남아는 죽음이 있을 뿐 의롭지 못하게 굴복해서는 안 된다.[南八, 男兒死耳, 不可為不義屈.]” 하니, 남제운은 “공께서 저를 알아주시니, 어찌 감히 죽지 않겠습니까.[欲將以有為也. 公有言, 雲敢不死.]” 하고 함께 순절하였다. <舊唐書 卷187 張巡列傳>

남팔불굴[南八不屈]  당(唐)나라 때 남제운(南霽雲)을 지칭한 말이다. 당나라 한유(韓愈)의 장중승전후서(張中丞傳后序)에 “성(城)이 함락되어 적병이 칼날로 장순(張巡)을 위협하며 항복하라고 하니, 장순이 굽히지 않자, 곧바로 끌고 나가 참수하려고 하였다. 또 남제운에게 항복 받으려고 하였으나, 남제운이 응답하지 않았다. 장순이 남제운을 부르며 말하기를, ‘남팔(南八)아! 남아가 죽었으면 죽었지 불의(不義)에 굽혀서는 안 된다.[南八, 男兒死耳, 不可為不義屈.]’고 하니, 남제운이 웃으며 말하기를, ‘장차 살아서 일을 하려고 하였으나, 공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감히 죽지 않겠습니까?[欲將以有為也. 公有言, 雲敢不死.]’라고 하고서, 굽히지 않고 죽었다.”라고 하였다.

남팔연생[南八捐生]  남팔이 목숨을 버림. 남팔은 당나라의 남제운(南霽雲)으로, 항렬상 여덟 번째라 붙여진 호칭이다. 안녹산(安祿山)의 난 때 성이 함락되자 장순(張巡)이 “남팔아, 남아는 죽을 뿐이니 불의에 굽혀서는 안 된다.”라고 소리지르자, 남제운이 웃으며 “훌륭할 일을 할 뿐입니다. 공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감히 죽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고 한다. <新唐書 卷192 張巡列傳>

남패촉로[南敗蜀虜]  남쪽으로 촉의(蜀) 반군을 패퇴시킴. 영정(永貞) 원년(805)에 서천절도사(西川節度使) 위고(韋皋)가 죽어 그의 막료로 있던 유벽(劉闢)이 스스로 절도유후(節度留後)가 된 뒤에 검남서천절도사(劍南西川節度使)로 임명되자 반란을 일으켜 재주(梓州)를 공격해 점거하였다. 그 이듬해에 고숭문(高崇文)과 절도사(節度使) 엄려(嚴礪) 등이 신책행영병(神策行營兵)을 거느리고 토벌하였는데, 이때 최간(崔簡)이 엄려(嚴礪)에게 계책을 제시하였다. 촉(蜀)은 검남(劍南)・서천(西川) 지역인 성도(成都)를 가리킨다.

남팽[南烹]  남쪽 지방의 방식으로 요리한 음식이다. 당나라 한유(韓愈)의 초남식이원십팔협률(初南食貽元十八協律)에 “내가 남방으로 귀양을 왔으니, 남방의 음식을 먹는 게 당연하지.[我來禦魑魅 自宜味南烹]”라고 하였다.

남평[南平]  나주(羅州) 북쪽의 현읍(縣邑) 이름이다.

남평현[南平縣]  복건성 연평부(延平府)에 속한 현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