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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야[琅琊]~낭야[良夜]~낭야대[琅瑘臺]~낭야대명[琅邪臺銘]


낭야[琅邪]  산 이름. 저주(滁州) 서남쪽에 있다. 서진(西晉)이 오(吳)를 정벌할 때 낭야왕(琅邪王) 사마주(司馬伷)가 군대를 통솔하여 머물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낭야[琅邪]  동진(東晉)을 건국(建國)한 중종(中宗) 원황제(元皇帝) 사마예(司馬睿)를 가리킨다. 선제(宣帝) 사마의(司馬懿)의 증손(曾孫)이며, 낭야무왕(琅邪武王) 사마주(司馬伷)의 손자이다. 서진(西晉)의 왕족으로, 15세에 낭야왕(琅邪王)을 세습하였다. 316년 서진의 민제(愍帝)가 흉노(匈奴)의 유요(劉曜)에게 붙잡히자 진왕(晉王)이라 일컫고 연호(年號)를 건무(建武)로 고쳤으며, 다음 해 민제(愍帝)가 죽자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랐다. 강북(江北) 지역을 이민족의 손에서 되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귀족 세력에 의해 크게 힘을 쓰지 못하였고, 만년에는 왕돈(王敦)이 이끄는 내란 세력에 밀리다가 병사하였다.

낭야[瑯琊]  낭야는 중국 안휘성(安徽省) 청류현(淸流縣) 남쪽에 있는 산이름이다.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가 39세 때인 1045년에 저주지사(滁州知事)로 부임하여 취옹정(醉翁亭)을 세우고 지은 그 기문에 “저주 고을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모두 산이다. 그중에 서남쪽의 산봉우리들은 숲과 계곡이 한층 더 아름답다. 그곳을 바라보면 수목이 울창하여 그 안이 깊고 봉우리가 우뚝한데, 이는 곧 낭야이다.”라고 하였다. <文忠集 卷39 醉翁亭記>

낭야[琅琊]  낭야산(琅琊山)으로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성현(城縣)에 있으며, 琅邪(낭야)라고도 표기하는데,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28년에 이곳에 올라 비석을 세우고 자신의 공덕(功德)을 새겨 넣었다.

낭야[琅琊]  산동성(山東省) 제성현(諸城縣)의 동남쪽에 있는 산의 이름이기도 하고 옛 현의 이름이기도 하다.

낭야[良夜]  축제를 벌이는 좋은 밤.

낭야대[琅邪台]  지명. 산동(山東) 남쪽에 있다. 진시황이 말을 타고 올라 천하를 내려다보았다고 알려진 곳이다. ‘琅琊’로도 쓴다. 진시황(秦始皇)이 그 대를 묻고 각석기공(刻石紀功)했었다.

낭야대[琅瑘臺]  진 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한 후 순행 중 산동성(山東城) 낭야산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았다는 곳이다.

낭야대명[琅邪臺銘]  산동성(山東省) 낭야산(琅邪山)에 진시황(秦始皇)이 누대(樓臺)를 세우고 자신의 공을 기려 세운 비명(碑銘)이다. 사기(史記) 진시황기(秦始皇紀)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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