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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추[老古錐]~노골[顱骨]~노공[潞公]~노공걸미[魯公乞米]


노고[勞苦]  힘들여 수고하고 애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수고스럽게 힘들이고 애씀.

노고설고[魯鼓薛鼓]  노고(魯鼓)는 노(魯) 나라의 북이고, 설고(薛鼓)는 설(薛) 나라의 북이다. 노고와 설고의 구분은 곧 음절이 서로 길고 짧고 한 데에 있었다. <禮記 投壺>

노고추[老古錐]  불교의 용어로, 노고(老古)한 송곳도 능히 물건을 뚫는 용(用)이 된다는 것인데, 노고라는 것은 존칭이고 추는 물건을 뚫는 것으로 사가(師家)의 설득하는 기봉(機鋒)이 초준(峭峻)함을 말한 것이다. 노숙(老熟)한 사가(師家)에 대한 경칭(敬稱)으로 쓰인 말이다. 즉 노숙한 사가의 선기(禪機)가 송곳처럼 예민하다는 데서 온 말이다. 노대원숙(老大圓熟)함을 의미한다. 허당백엄록(虛堂柏嚴錄)에 “앞니에 털이 난 노고추, 깊은 밤 물소리 들으며 화롯가에 앉아있네.[版齒生毛老古錐 夜深聽水爐邊坐]”라고 하였다.

노곡[老穀]  오래된 닥나무라는 뜻이다. 은(殷) 나라 태무(太戊) 때에 요망한 뽕나무와 닥나무[桑穀]가 금새 자라났다고 하는 고사가 있다. <史記 殷紀>

노골[顱骨]  두골(頭骨). 해골(骸骨). 머리를 감싸고 있는 두개골(頭蓋骨). 척추동물의 머리를 이루는 뼈를 통틀어 이르는 말. 꼭뒤의 뼈. 머리뼈.

노공[奴貢]  관노(官奴)가 국가에 대하여 부담해 바치는 돈이나 물품을 이른다.

노공[魯公]  노군공(魯郡公)에 봉(封)해진 당(唐)나라 명필 안진경(顔眞卿)을 추존(推尊)하여 부르게 된 명호(名號)이다. <新唐書 卷153 顔眞卿列傳>

노공[魯公]  당(唐)나라의 충신이자 서예가로 유명한 안진경(顔眞卿)의 봉호(封號)이다. 일찍이 노군개국공(魯郡開國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노공으로 불렸는데, 해서・행서・초서의 각 서체에 모두 능하였다. 안진경은 이 태보(李太保)에게 쌀을 빌려 달라고 청하는 걸미첩(乞米帖)을 지었다. <古今事文類聚後集 卷22>

노공[魯公]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을 말한다.

노공[潞公]  송(宋)나라 때 명재상으로 노국공(潞國公)에 봉해진 문언박(文彦博)을 가리킨다. 자가 관부(寬夫)이며, 분주(汾州) 사람이다. 사마광(司馬光), 부필(富弼) 등 13인과 함께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라는 노인의 모임을 만들었다. 인종(仁宗), 영종(英宗), 신종(神宗), 철종(哲宗)의 네 임금을 섬기며 50년 동안 출장입상(出將入相)하고 태사(太師)로 치사하였는데 향년이 92세여서 노재상(老宰相)으로 유명하다. 정명도(程明道)가 죽었을 때 그의 묘비명(墓碑銘)을 썼다. 정호(程顥)에게 평소 특별한 호칭이 없었는데, 그가 죽자 문언박이 중론(衆論)을 널리 수합하여 그 묘에 명도선생(明道先生)이라고 제(題)하였다. 제묘는 무덤에 죽은 자의 이름 등을 써서 표시하는 것이다. <宋史 卷四百二十七 程顥傳><宋史 卷313 文彦博列傳>

노공[魯恭]  후한(後漢) 때 평릉(平陵) 사람으로 자는 중강(仲康)이다. 일찍이 중모령(中牟令)으로 있으면서 크게 덕정(德政)을 베풀었고, 뒤에 사도(司徒)에 이르렀다. <後漢書 卷25 魯恭列傳>

노공걸미[魯公乞米]  노공은 당(唐)나라의 충신이면서 서예가인 안진경(顔眞卿)을 가리킨다. 노공(魯公)은 그의 봉호(封號)이다. 소식(蘇軾)의 화도걸식(和陶乞食) 시에 이르기를 “안 노공 역시 쌀을 꾸어 와, 밥 짓는 것도 되레 사양하지 않았네.[魯公亦乞米 炊煮尙不辭]”라고 하였다.

노공걸미[魯公乞米]  노공(魯公)은 당나라 안진경(顔眞卿, 709~785)의 봉호(封號)이다. 그가 이태보(李太保)에게 “생계를 꾸리는 데에 졸렬해서 온 집안이 죽을 먹고 있는데 그렇게 몇 달이 지나는 동안 지금은 이마저도 떨어졌으니 참으로 걱정이 되어 애가 탈 뿐이다.[拙於生事 擧家食粥 而已數月 今又罄乏 實用憂煎]”라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내면서 쌀을 구걸한 이른바 걸미첩(乞米帖)의 고사가 있다. <古今事文類聚後集 卷22 乞米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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