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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처[露凄]~노척[魯瘠]~노천[魯川]~노천예우[老泉預憂]


노처[露處]  노숙(露宿).

노처[露凄]  가을 서리가 처량하다.

노처도아안색동[老妻睹我顔色同]  늙은 아내가 자신을 바라보며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을 가리킨다.

노척[魯瘠]  당(唐)나라 한악(韓偓)의 감사(感事)에 “진나라 참소가 끝내 풀리지 않아, 노나라의 수척함이 구제되지 않았네.[晉讒終不解 魯瘠竟難痊]”라는 구절이 나온다. 참고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9년 조에 “기나라는 하나라의 후예로서 동방의 오랑캐와 가깝게 지내고, 노나라는 주공의 후예로서 우리 진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관계이다.[杞夏餘也 而卽東夷 魯周公之後也 而睦於晉]”라고 전제한 뒤에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 진나라가 꼭 노나라를 여위게 하고 기나라를 살지게 해야 한단 말인가.[何必瘠魯以肥杞]”라고 반박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노천[老天]  말세.

노천[老泉]  송(宋) 나라 때의 문장가인 소순(蘇洵)의 호이다. 미주(眉州) 미산(眉山) 사람이다. 그의 아들인 동파(東坡) 소식(蘇軾)과 소철(蘇轍)과 더불어 문장에 뛰어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들었다. 노소(老蘇)라 하여 3소의 구별을 두었다.

노천[魯川]  풍지기(馮志沂,)의 자(字)이다. 호는 미상재(微尙齋)・적적재(適適齋)이다. 환재가 1861년 열하문안사행 때 교분을 맺었던 중국 인사로, 진사 급제 후 형부 주사(刑部主事)를 거쳐 여주 지부(廬州知府) 등 지방관을 전전하며 선정을 폈다. 매증량(梅曾亮)을 사사하여 그의 수제자로 일컬어졌고, 저서로는 미상재시문집(微尙齋詩文集), 적적재문집(適適齋文集)이 있다.

노천[露泉]  속리산 계곡을 타고 흐르는 감로천(甘露泉)의 약칭이다.

노천논고제 여기능용평발[老泉論高帝 與其能用平勃]  노천(老泉)은 고조(高祖)를 논할 적에 진평(陳平)과 주발(周勃)을 잘 등용한 것을 칭찬하다. <蘇軾 漢高帝論> 평발(平勃)은 진평(陳平)과 주발(周勃)을 가리킨다. 고조(高祖)는 죽기 직전 여후(呂后)에게 진평(陳平)을 등용하되 주발(周勃)로 돕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뒤에 여후(呂后)가 정권을 독단하자 두 사람은 서로 친하게 지내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당시 태위(太尉)로서 군권을 쥐고 있던 주발(周勃)이 진평(陳平)과 상의하고 반란을 획책하는 여록(呂祿), 여산(呂産)을 주륙한 다음 대왕(代王) 유항(劉恒)을 옹립하니, 이가 바로 문제(文帝)이다. 이에 한(漢)나라는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 내용은 소순(蘇洵)의 고조론(高祖論)에 보이는데, 고조론(高祖論)은 고문진보(古文眞寶) 권7에도 실려 있다.

노천예우[老泉預憂]  노천은 소순(蘇洵)의 자로, 그는 명이자설(名二子說)에서 아들 소식과 차자 소철의 일생을 미리 헤아렸고, 특히 철에 대해선 “철은 화와 복의 중간인 것이다. 철아! 나는 네가 화를 면할 줄을 아노라.[是轍者 禍福之間 轍乎 吾知免矣]”라고 하였다. <古文眞寶後集 卷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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