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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연희지시[魯侯燕喜之詩]~노희채의[老戲彩衣]~노희학자우가애[老喜學者尤可愛]


노후[魯侯]  노후(魯侯)는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이다. 서경(書經) 비서(費誓) 서(序)에 “노후 백금이 곡부(曲阜)에다 도읍을 정하였는데, 서이(徐夷)가 일어나 동교(東郊)가 열리지 않자 정벌하기 전에 비(費)에서 군사들에게 맹세하였다.”라고 하였다.

노후[魯侯]  시경(詩經) 비궁(閟宮)에 “노후(魯侯)가 잔치하며 기뻐하시니 훌륭한 아내와 장수하시는 어머니가 계시도다.[魯侯燕喜, 令妻壽母.]”라고 하였다. 노후(魯侯)는 노(魯)의 희공(僖公)을 가리킨다.

노후[魯侯]  제나라의 속국 노(魯)나라의 후(侯)이다.

노후반[魯侯泮]  제후(諸侯)의 학궁(學宮). 시경(詩經) 노송(魯頌) 반수(泮水)에 “즐거운 반수(泮水)에 잠깐 그 미나리를 캐었노라.”라고 했는데, 그 주에 “반수는 반궁(泮宮)의 물이다. 제후의 학궁을 반궁이라 하니, 동・서・남방에 물이 있어 반벽(半壁)과 같다.”라고 하였다.

노후연희지시[魯侯燕喜之詩]  노후(魯侯)가 잔치하며 기뻐하는 시. 시경(詩經) 비궁(閟宮)을 가리킨다. 새로 사당을 짓고 노나라 희공(僖公)의 공덕을 칭송한 시인데, 이 시의 8장에서 희공의 비와 어머니를 기려 “노후가 잔치하며 기뻐하시니 훌륭한 아내와 장수하시는 어머니가 계시도다.[魯侯燕喜, 令妻壽母.]”라고 하였다.

노후편파주왕과[怒後便把周王戈]  주왕(紂王)의 학정(虐政)에 분노를 느낀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이 주 무왕(周 武王)을 위해 창을 잡고 은(殷)나라를 정벌한 일을 가리킨 것이다.

노흠론서막[盧欽論徐邈]  진(晉)나라 노흠(盧欽)이 글을 지어 위 무제(魏武帝) 때의 서막(徐邈)에 대해 논평하기를 “지난날 모효선(毛孝先)과 최계규(崔季珪)가 권력을 행사할 당시 청렴한 선비를 중시하자 그 당시 사람들이 다 수레와 의복을 검소하게 바꿨으나 서공만은 평소의 태도를 고치지 않았으며, 그 이후엔 온 세상이 사치를 숭상하였는데 서공만은 고상한 뜻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가 이전에 세태를 따라 검소하게 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뒤에 고상함을 지킨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는 세상 사람이 무상한 것이고, 서공은 유상한 것이다.” 하였다. <三國志 卷27 徐邈傳>

노희채의[老戲彩衣]  춘추 시대 초(楚) 나라의 효자인 노래자가 나이 70세에 채색옷을 입고 어린애처럼 장난을 하여 부모를 즐겁게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노희학자우가애[老喜學者尤可愛]  주희(朱熹)가 편찬한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0 낙양의론(洛陽議論)에 “여진백은 늙어서도 학문을 좋아하여 철저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에 대해서 정숙이 말하기를 ‘늙어서도 학문을 좋아하는 자는 더욱 사랑스럽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는 원래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면 의지와 근력이 쇠해지게 마련인 데다 배워도 미치지 못할 걱정이 있고 배울 햇수도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성인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얼마 배우지 못하고 햇수가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끝내 도를 듣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呂進伯老而好學 理會直是到底 正叔謂老喜學者尤可愛 人少壯則自當勉 至於老矣 志力須倦 又慮學之不能及 又年數之不多 不曰朝聞道夕死可矣乎 學不多 年數之不足 不猶愈於終不聞乎]”라는 말이 나온다. 정숙(正叔)은 정이(程頤)의 자(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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