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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담금쇄[綠紞金鎖]~녹대[鹿臺]~녹대조구주지육림[鹿臺糟丘酒池肉林]


녹담금쇄[綠紞金鎖]  녹담(綠紞)은 녹색 칠을 먹인 창(槍) 이름이고, 금쇄(金鎖)는 갑편(甲片)에 금사(金絲)를 꿰어 장식한 갑옷을 말하는데, 두보(杜甫)의 중과하씨(重過何氏) 시에 “빗속에 버려진 것은 금쇄갑이요, 이끼 위에 누워 있는 것은 녹담창일세.[雨抛金鎖甲 苔臥綠沈槍]”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세상이 태평하여 전쟁이 없게 된 것을 의미한다.

녹대[鹿臺]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이 재물과 보화를 쌓아놓았던 행궁(行宮) 이름이다. 주(紂)의 군대가 패하자 주가 도망쳐 녹대에 올라간 뒤 보옥으로 장식한 옷을 입은 채 불타 죽었다고 한다. <史記 卷3 殷本紀>

녹대[鹿臺]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이 축조한 대(臺)의 이름으로 전설에 의하면 폭이 사방 3리(里) 높이가 1000자(尺)에 달했다고 하였다.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기현(淇縣) 서쪽 경내에 있었으며 주왕이 백성들에게 부세를 높여 징수하여 폭정을 행하여 이 녹대를 지어 놓고 상나라의 모든 재화들을 이곳에 보관하려고 하였다. 주 무왕(周武王)과의 싸움에서 패한 주왕은 녹대에 올라가 불길에 뛰어 들어 죽었다. 사기(史記) 권3 은본기(殷本紀)에 의하면 “갑자일(甲子日)에 주(紂)의 군대가 패하자 주가 도망쳐 녹대(鹿臺)에 올라간 뒤 보옥으로 장식한 옷을 입은 채 불타 죽었는데, 주 무왕이 마침내 주의 머리를 베어 태백기에 매달고, 달기를 죽였다.”라고 하였다. <書經 周書 武成>・<史記 殷本紀>

녹대조구주지육림[鹿臺糟丘酒池肉林]  설원(說苑)에 “은주(殷紂)는 녹대(鹿臺)・조구(槽丘)・주지(酒池)・육림(肉林)을 만들고, 궁궐 담에 그림을 그리며, 기둥과 들보를 아름답게 조각하고, 수놓은 비단이 당(堂)을 덮으며, 금옥(金玉) 같은 진보(珍寶)가 그득하고, 미녀와 광대, 종고(鐘鼓)와 관현악기(管絃樂器)를 질탕하게 울리고 방종한 생활을 금하지 않아 천하의 재력이 더욱 고갈되었다. 그 때문에 끝내 자신은 죽고 나라는 멸망하여 천하 사람들의 치욕을 받았으니, 수놓은 비단과 곱게 짠 갈포(葛布)를 써서 사치한 일에 기인한 것이 아니겠는가.[紂爲鹿臺糟丘酒池肉林 宮牆文畫 雕琢刻鏤 錦繡被堂 金玉珍瑋 婦女優倡 鐘鼓管絃 流漫不禁 而天下愈竭 故卒身死國亡 爲天下戮 非惟錦繡絺紵之用耶]”라고 한 데서 보인다. 녹대(鹿臺)는 대(臺) 이름으로, 은(殷)나라 도읍 조가(朝歌)에 있던 건물 명칭이다. 상(商)나라 주왕(紂王)이 주옥(珠玉)과 전백(錢帛)을 보관한 곳이다. 조구(糟丘)는 술지게미가 쌓여 언덕을 이루었다는 뜻으로, 술을 아주 많이 빚어 지나치게 술에 취해 지냈음을 극도로 말한 것이다. <尸子 下><韓詩外傳 4> 주지육림(酒池肉林)은 술로 연못을 삼고, 고기를 매달아 숲으로 삼았다는 뜻으로, 지극히 호화롭고 사치한 생활을 이른다. <韓非子 喻老><史記 殷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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